아버지를 보내드리는 방식 1
발인

길에서 주운 시 22

by another N

‘사람이 떠나자 죽음이 생명처럼 찾아왔다’ *

백주 대낮에 갑자기 태양처럼 환한 그늘이 졌다

사람이 떠났는데 사람들이 물밀듯 몰려온다

이토록 새까만 죽음을 저토록 하이얀 봉투들로 덮을 수 있을까

내 아버지 가시는데 내가 슬퍼할 겨를이 없다

내 아버지 가시는데 객들이 더 말이 많다

이럴 순 없다, 우리 아버지인데 우리가 보내드려야지

둘째 아우 빈소 뒤편 쭈그려 앉아

아버지 인생 드라마 영상으로 만들고

손녀딸 눈물 훔쳐가며 할아버지께 이별편지 쓰고

나 아버지 영정사진 아래 일렁이는 촛불 밑 추도의 글 쓰고

셋째 아우 생전에 아버지 쓰신 글 낭독하고

아버지 살았을 적 우리 집 드나들며 밥 얻어먹은

친구 목사 아버지 추억 더듬으며 기도한다

그제야 목멘 슬픔이

그제야 돌덩이에 눌린 오열이 터져 나온다

아버지! 아버지!

몇 번이고 불러본다


* 이영광 '떵떵거리는' 중에서 인용




평소 인문공부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말했었다. 지난 모든 세대보다 삶의 외양이 훨씬 풍요로워졌는데도 왜 우리의 영혼은 허전하고 외롭고 빈곤한가? 그 원인 중 하나를 이렇게 규명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결혼은 웨딩업체에게, 각종 잔치는 이벤트 업체에게, 자녀교육은 학원에게, 노후는 00 투자증권에게, 그러다 결국 삶의 마무리는 장례업체에게... 당신은 결제만 하세요!" 우리가 스스로 꾸려가고 만들어가는 삶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분명 내가 삶의 주인인데, 삶을 외주화外注化 해버렸다. 이름하여 ‘삶의 총체적 외주화’, 삶의 기쁨과 환희, 의미를 빼앗겨버렸다. 아... 함께 탄식을 내뱉었다.

10년 전 이 즈음이었다. 가족들 둘러앉아 들뜬 명절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이른 새벽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 느그 아부지가 안 움직여야”. 그 뒤로는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아직도 기억이 가뭇하다. 막내딸과 아들 삼 형제와 딸린 식솔들은 엄마의 말처럼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아버지 곁에 머물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인간이 언어를 만들어 놓은 건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타인의 죽음에 의례적으로 쓰던 ‘황망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알았고 그 황망함 때문에 무너지지 않도록 ‘심장마비’라는 낱말이 그나마 우리들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정신없이 진행되는 수순들과 손님들의 물살에 떠밀리고 있던 중,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틀째 날이었었다. 아, 오늘이 지나면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있던 이승을 떠나는구나. 그렇다면, 우리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보내 드려야 할까? 이승에서의 마지막날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서로의 가슴속에 남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대로 손님들 맞이하고 봉투 받고 음식 챙기다가 내일 해가 뜨면 장지로 모시고 가 묻어드리고 끝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자식들은 손님들 맞는 일을 멈추고 함께 머리를 모았다. 그리고, 뜻을 모았다. 그래, 우리만의 방법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리자! 우리만의 리추얼로 아버지에게 인사드리자. 장례식장 측에 부탁해서 비어있는 공간을 빌렸다. 마지막 발인날 아침, 일가친척들,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추억하며, 살던 집 떠나 먼 길 가는 아버지를 위한 리추얼을 만들었다.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고, 당신이 우리 아버지여서 고마웠다고, 잠시 떨어졌다 다시 만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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