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에게 배우는 방식 1

길에서 주운 시 7

by another N

일요일 아침

묵은 살림과 옷을 정리하던 아내가

안 신는 신발을 버릴 테니 골라 꺼내놓으란다

신발장, 트렁크를 뒤져 버릴 놈들을 고른다

잠깐, 기준을 정해야지

오래된 놈들, 유행 지난 놈들, 모양이 틀어진 놈들

음, 뒷굽이 닳은 놈들


그러다 문득 아우슈비츠를 떠올렸다

아침이면 연병장에 줄을 세워

가스실로 보낼 허약한 사람을 골라냈다는

내 기준으로 골라낸 신발들을 널어놓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신발들의 앞코가 시무룩하다


신발들이 내게 말했다

너도 내일모레가 오십이지

슬슬 주름도 늘어가고 있지

이제 유행은 생각도 않고 옷 입은 지 꽤 됐지 아마

뒤꿈치에 각질 잡히고 굳은살 늘어가는 것도

내가 다 알지


나도 시무룩해졌다




삶의 모든 사태에서 가장 쉽게 발을 빼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타자화他者化’다.

재빨리 말을 뱉으면 된다. “이 놈의 회사 …”,“대표가 그 모양이니 …”, “ 이 나라는 도대체 … ”, “남자(여자)들은 하여튼 …”.

이제,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던졌으니 고요하던 수면 위에 자연스레 파문이 인다. 이미 하나 던졌으니 하나 더 던지는 건 일도 아니다. “이 놈의 회사를 때려치우던지 해야지”,“대표가 그 모양이니 우리가 뭘 어쩌겠어”, " 이 나라는 도대체 희망이 없어"

마침, 그 호숫가에 함께 선 사람들이 있다면 호수의 수면이 일렁이는 건 순식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語)과 마음(心)이 그런 방식으로 상(想)이 되고 염(念)을 거쳐 실체가 된 후 사람과 일과 세상을 해친다. 끊임없이 동조를 요구당하는 세상에서 배돌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언젠가부터 내가 부리는 사물들을 오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날 기다리는 자동차, 정확하게 손가락의 움직임을 감지해 명령을 수행하는 컴퓨터, 하루하루 소멸되어 가면서도 억울해하지 않는 연필과 지우개들. 그리고, 나의 행적을 모두 알면서도 묵묵하고 과묵한 신발. 언제나 이드거니 그 자리에 있는 그들. “오늘도 애썼다. 고맙구나. 니들이 고생이 많다.”(입 밖으로 소리 내면 주위사람들이 놀랄 수 있으니 맘 속으로만) 더 나은 글을 쓰는 일이, 더욱 섬세한 감성을 조형해 가는 일이. 자신의 사물과 장소를 극진하게 소우지(掃除)하는 일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조금씩 깨우쳐 간다. 더불어, 믿고(知) 연습(行) 해 본다. 아니다. 행(行)하고 믿어(知) 본다. 사물과 자신의 일과 이웃을 타자화하지 않(으려)는 자는 이미 삶의 또 다른 진경, 초입길에 선 사람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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