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시 3
삶이라는 바윗덩이가 내 영혼을 짓누르고
쫓아오는 사냥개 같은 사태들이
여유를 몰아칠 때
시를 읽는다
가벼운 무게
여유로운 행간
순백의 여백
그 사잇길에서 자라나는
꽃, 대지, 바다, 별, 구름, 나무
머리 세차게 흔들고
눈 질끈 감아 떠보면
신기루처럼 사라진
환영이지만
내 돌아온 자리는
이전의 자리가 아니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직장을 뛰쳐나와 프리랜서의 삶을 시작했다. 말이 프리랜서지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뭄에 콩 나듯 간헐적으로 기회가 오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가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다. 알았으니 실행해보고 싶었다. 집중하고 공부하면 영혼이 자라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나 자신을 돌보고 키울 영혼의 양분을 맘껏 섭취하고 나면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설렘이 떠나자 막막함이 찾아왔고 막막함이 지나가자 두려움이 들이닥쳤다. 타고 온 배를 이미 불사른 후였기에 강 저편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용기 아니, 객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싶다. 끼니때마다 챙겨야 할 입이 무려 넷이었는데. 돈이 없으니 내 영혼에 양분을 무료로 공급해 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곳은 단 한 군데였다. 도서관! 선조들이 날 위해 남겨놓은 양식 창고, 후손들 그 누구도 초라해져서는 안 된다고 보물을 쌓아놓은 창고. 도서관! 태양과 함께 출근해 나무 위에 머리를 조아리고 앉았다가 별들과 함께 퇴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대책 없고 기약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절에 시詩를 만났다. 집중하다 지칠 때면 하릴없이 서가를 거닐고, 창가에 빛바래가던 시집들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시詩! 가 나를 찾아왔다는 파블로 네루다의 말이 믿겼다.
독재자들이 왜 시인을 추방하고 죽이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무렵 나에게 시詩는 힘든 현실을 견디게 해 준 향정신성 의약품이었다. 시편詩篇들이 눈과 머리가 아니라 점자를 읽듯 몸으로 읽혔다. 나도 시인의 눈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벤치에 누워 시를 읽다가 순백의 여백에 무언가를 끄적여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