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미식가 남편을 소개합니다.
“하 별로다 진짜. 이거는 도저히 못 먹겠는데?”
숯불 치킨집에서 신랑이 얘기한다. 구글 평점 4.5 이상, 네이버 블로그에 맛집을 뒤져서 간 곳이 영 마음에 안 드나보다. 바삭바삭한 치킨 껍데기에 촉촉한 치킨 속살을 맛있게 뜯고 있던 나는, 이곳을 추천한 장본인인 나는, 한순간에 민망한 마음이 올라와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이게 그 정도로 못 먹어줄 음식인가?
남편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음식은 시어머니 음식이다. 엄마가 해준 갈비찜이,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가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엄마 음식을 먹을 생각에 시댁 가는 길은 남편 입꼬리가 조커처럼 승천한다. 엄마표 외 다른 음식에는 도통 만족하는 일이 드물다.
김장 김치를 먹을 때에도 신랑은 친정 김치보다 시댁 김치 먹는 것을 더 선호한다. 김치를 꺼내면 물어본다. 이 김치는 어디 거냐고. 시댁 김치, 친정 김치를 대하는 눈빛부터가 다르다. 친정 김치를 먹을 때는 불호의 기운이 기저에 깔려있다. 이 두 가지 김치를 골고루 먹이는 방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거다. 막상 내가 속여 말하면 이게 어디 김치인지도 모른다.
시어머니의 음식은 물론 맛있다. 재료도 신선하고,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할 맛이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하실 때 대단한 비법 혹은 대단한 정성이 들어갈 거라 기대하며 뒤에서 지켜봤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랐다. 시어머니는 냉장고에서 청정원 갈비 양념을 꺼내셨다. 띠로리! 맛의 비밀은 백설이었고, 청정원이었다. 음식은 물론 맛있지만, 대기업 양념이 들어간 음식을 인정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뒤로 엄마 음식이 최고라 말하는 남편에게 항상 반문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반면에 우리 친정 엄마는 정석대로 손수 양념을 만든다. 어렸을적 우리 집엔 메주가 대롱대롱 매달려 방안 전체를 채웠고, 베란다에는 간장과 고추장이 든 장독대들로 가득했다. 고추는 부모님이 농사지어서 직접 햇볕에 말린 태양초 고춧가루를 먹고, 농사지은 참깨와 들깨도 방앗간에서 참기름, 들기름을 짜서 먹는다. 모든 음식에 근간이 되는 재료를 손수 정석대로 만드는 가풍에서 자란 나는 적어도 내가 제대로 된 맛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진정한 맛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은 이 사람이 자꾸 음식 비평을 해댄다. 신랑의 볼멘소리를 들을 때, 남편이 어머님 음식을 그리워할 때, 뭘 안다고 저러나. 저것을 어찌하면 좋으냐. 답답하게만 보였다. 얼마 전 딸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3박 5일 태국 여행을 갔을 때였다. 아이들 밥을 따로 챙기지 않았던 지라, 한국인 입맛에 맞고, 아이들이 먹을 수 있을 만한 메뉴로 골라서 식당을 찾아다녔다. 대부분 평이 좋았던 곳이어서인지, 아이들이 한 젓가락도 엄마에게 양보하지 않고, 바닥을 싹싹 긁어가며 먹곤 했었다. (물론 여기서도 남편은 이게 뭐냐며 투덜댔다) 아이들을 잘 먹이고 다녔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해하며 자화자찬 중이었다. 그런데 여행 말미에 딸이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집밥 먹고 싶어“
집밥? 내 밥을 말이니? 맛집만 주구장창 다녔는데, 이 가운데서 엄마 음식이 생각났단 말이니?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요리에 있어서는 똥손 of the 똥손 이다. 그래, 친정에서 받아 기본 베이스는 좋은 양념을 갖다 쓴다 쳐도 나에게 이건 ‘건강한 음식’에 의미가 있지 ‘맛’과는 별개의 문제다. 요리에 근본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고기가 다 익었다 싶어서 자르면 아직도 시뻘건 생살이 툭툭 튀어나오고, 계란도 하나 삶을 줄 몰라서 완숙 아니면 노(no)숙이다. 그런데 이런 내 음식이 그립다고? 이런 음식이 그리워할 만한 음식이라고?
순간 머리를 댕 맞은 느낌이었다. 내 음식이 음식 취급을 받는 데서 그랬고, 내 딸이 내 남편을 닮아 엄마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에서 그랬다.
된장 맛은 이게 정답이라고, 내가 정답을 아는데 네가 왜 아는 척하냐고, 한때 내 생각이 깊은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틀린 게 아닌 다른 것이었을 뿐인데, 나는 남편이 그리워하는 시어머님 음식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시판 양념이 들어갔을지언정, 어머님의 손맛을 그리워할 수도 있는 건데, 그 사람의 향수를 무턱대고 깡그리 무시해 버렸던건 아니었을는지.
오만과 편견으로 꼬일 대로 꼬였던 나의 마음은, 시어머님에 나를 대입하면서 시원하게 풀려버렸다. 부끄럽지만 급속도로 관대해졌다. 내 딸이 내 음식을 먹고 싶다고 말할 때, 옆에서 사위가 그 음식은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라고 평가하면 무척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말이다.
엄마 음식에 대한 향수는 객관적으로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그가 살아온 인생 그 자체이다. 남편이 엄마 음식을 그리워하면 그리워하는 대로, 그가 살아온 세월 그대로를 인정해 주어야겠다. 내 아이가 내 음식을, 나를 마음껏 떠올려 주길 바라는, 순수하게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는 오늘의 내 남편을 존중하는 길을 선택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