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의 사명

by 해피수염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나에게 종이 한장을 건내줬다. 받아쓰기 시험지였다. 보자마자 붉은 작대기 4개가 눈에 확 들어왔다.


“엇? 되게 많이 틀렸네?”


뇌에서 거르지 못하고, 0.1초의 반응 속도로 가감없는 표현이 나와버렸다.


“아니야, 내 친구는 6개 틀렸어. 그리고 다 틀린 친구도 있어!”


의기양양과 의기소침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보다 못한 성적이 존재한다는걸 친절하게 짚어주었다. 나 정도면 나쁘진 않은거라고.


“그래? 문제가 어려웠나보네”


그 친구들 없었으면 어쩔뻔. 딸의 의도대로 금세 수긍해 준다. 비교는 하지 말라 하지만, 여기서 비교는 꽤 쓸모있어 보였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환경에서, 나보다 못한 성적의 사람을 굳이 찾아보는 노력. 심리적 안도감을 갖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래도 꼴찌는 아니야.’ 라는 한줌의 희망. 뒤에 누군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는건, 그야말로 엄청난 심적 안정감을 준다. 그게 내 얘기가 될 줄은 몰랐지만.


최근 나는 미루고 미뤘던 그림을 배우러 다닌다. 전공을 하지 못해, 여전히 미련이 남은 나만의 인생 숙제가 바로 미술이다. 지역 문화센터로 다니는데, 나 같이 아이를 양육 중인 전업주부나 은퇴를 하신 시니어 분들이 주를 이룬다. 첫 수업 시간에 듣기로, 비전공인 분들이 대부분이라 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온전히 즐기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아마추어 실력일거란 예상과는 한참 달랐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돌아다니시면서, 수강생들의 멋들어진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셨다. 대부분의 작품을 높게 들어 올리며 모두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해주셨다. 나를 제외한 수강생들 실력이 대단하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 말해도 깜빡 속을 정도다. 그림은 그려본 적이 없다는 말, 그림이 처음이라는 말, 다 순 거짓말이 아니었나하는 의심이 올라온다.

이번엔 내 차례다. 피하고 싶은 마음과는 상관없이, 선생님의 발끝이 나에게로 향했다. 나름 그 찰나마저도 부지런히 그림을 그려봤지만, 참혹한 말이 들려왔다.


“왜 아직도 그림이 그대로죠? 집에 가서 더 그려 오실꺼죠?”


수강생들은 스케치북을 포함한 모든 재료를 강의실에 두고 다니며, 수업 시간에만 그림을 그리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특별히 나에게는 강의실에 몇 개 있지도 않은, 귀한 일본제 일러스트용 펜까지 챙겨주셨다. 특별 관리 대상이 되어버렸음을 직감했다.


이번엔 진짜 ’나‘다. 꼴찌. 내 뒤에 아무도 없다는게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아무도. 뒤의 몇 명에게서 희망을 얻었던 나는, 내 앞의 몇 명에게 희망을 주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잘하지 못하는걸 하기란 쉽지 않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 것도 쉽지 않다. 수업이 있는 매주 월요일, 결석에 대한 유혹이 올라온다. 하지만 인생의 숙제처럼 느껴지는 미술에 대한 미련 때문에 안하는 것 역시도 쉽지 않다.


마인드컨트롤을 이유삼아 꼴찌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꼴찌임에 떳떳하기로 했다. 그래.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그림을 잘 그려서도 희망을 주지만, 못 그려서도 희망을 준다. 나는 무언가를 한다는 이유로 만으로도 남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못하는데 계속 하는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니 나름 꼴찌로서 사명감을 가져야겠다고. 출석률 100프로를 달성해야겠다고. 어설픈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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