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스쳐도 아픈 사람

by 해피수염




모기에 물리면 병원에 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 남편이다. 이번에 모기에 물린 자국이 다른 때와 다르다고 한다. 유난히 더 가렵다고 한다.

“요즘 말라리아가 유행이라던데, 나 아무래도 그거 같아”

“그냥 여러 방 한 곳에 물린 거 아닐까?”

보아하니 울긋불긋한 자국이 한 곳에 밀집되어 있다. 육안상 이상해 보이긴 했다.


그런데 이런 모기 의심 사례가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는 모기 물린 곳이 평소와 다르게 많이 부었다며 봉와직염같다고 했었다. 나는 이때 ’봉와직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그런데 올해는 말라리아라는 거다. 보통 사람은 의심에서 그치는 거로 안다. 우리 신랑은 다르다. 꼭 병원에 가서 확인을 받는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만 내 눈엔 아무리 봐도 괜찮아 보이는데, 하루 이틀만 기다려보면 알 것 같은데 말이다.

그의 병원 출석률은 결혼 초부터 높았다. 처음엔 심장이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것 같다며 병원을 향했다. 동네에 심장 잘 보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병원에서 괜찮다고 했다. 신랑은 병원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병원으로 갔다. 검사 결과는 부정맥이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이 정도 부정맥은 누구나 어느 정도 다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 언젠가는 살이 너무 많이 빠진다고 병원에 간 적도 있다. 내과가 가장 만만하다.

“저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요.”

“밥은 평소대로 먹나요?”

“아니요. 전보다 적게 먹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건강이 의심되는 경우는 밥을 평소대로 먹어도 더 급격하게 빠지는 경우라 했다. 밥을 덜 먹어서 빠진 거 같다며, 환자이길 바라는 나이롱 환자에게 그래도 끝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이 외에 정형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통원은 회사 출퇴근 정도의 일상이다. 하도 많아서 일일이 사례를 열거하기도 힘들다.

결혼 초반에는 신랑이 진심으로 걱정 되기도 했었다. 병원 다니는 모습을 바라봤던 친정엄마는 사위가 정말 아프다고 생각했는지 한약도 몇 번 지어주셨다. 나는 비타민계의 에르메스라는 독일제 오쏘* 을 챙겨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워낙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아프다. 한약과 오쏘*이 모기와 심장, 살 빠지는 것까지 해결해 주지 못한다.

잔병치레가 너무 많고, 꾀병이 의심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제는 일상이 되어 그의 곡소리에 무뎌져 버렸다. 게다가 아이들이 한참 손 갈 시기에 아프다고 징징대면 이건 괘씸하기까지 한다. 아무리 봐도 멀쩡해 보이는데 육아하기 싫어서 꾀병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왜 하필 지금 저러고 난리?‘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참 좋았어야 할 신혼 시기에 병원을 오가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건 내가 결혼을 한 건지 요양보호사로 취업을 한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다 나중엔 이 사람의 내면 심리가 궁금해졌다. 내면 아이 상처가 있어서 그런가. 어렸을 적에 아프지 않으면 부모님께서 관심을 주지 않으셨나. 시댁에만 가면 나는 관찰모드였다. 어머님께 어렸을 적 이야기를 물어보기도, 가족들과의 관계를 살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힌트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나이 차이 많이나는 늦둥이 막내아들로 사랑을 듬뿍 받아, 결핍 없이 자란 신랑이었다.

그러다 몇 년간 지속됐던 나의 의심과 의문이 그의 육아휴직 기간에 풀렸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첫째가 3살 때였다. 그는 사실 퇴사를 원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슈렉의 고양이 같은 눈으로 날 바라봤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그래서 일단 말로는, 정 힘들면 그만두라 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대차게 실행할 줄은 몰랐다. 다행히도 인사과에서 붙잡아 주어 퇴사의 꿈은 육아휴직 1년으로 대체되었다. 이 꿀 같은 육아휴직 기간에는 전에 알던 신랑이 아니었다. 그는 발리에서 한 달을 살면서 서핑을 배웠다. 약 15회 정도 수강했는데, 한 번의 결석이나 지각조차 없었다. 그리고 나선 보드까지 구매하여 제주도 바다 곳곳을 다니며 열정적으로 서핑을 했다. 하루 1-2시간을 너끈히 공원을 달렸으며, 돌산을 등반하기까지 하는 날다람쥐 같은 면모를 보여주었다. 유일하게 이 기간만큼은 병원을 찾지 않았다.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고, 다시 또 신랑은 온갖 곳이 아프다. 회사가 만병의 근원이라더니, 그렇게 보니 신랑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출퇴근 시간이 왕복 2시간이 기본, 길게는 5시간이다. 멀쩡한 사람도 병나는 수준의 통근 시간이다. 모기만 물려도 병원 가는 사람이 이걸 버티고 있다. 얼마나 대견한가. 그러니 신랑의 엄살을 조금 받아주긴 해야겠다. 다만 병원은 좀 혼자 다니면 좋긴 하겠다.

내일 또 병원에 가야 한다. 이번에는 무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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