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분노의 타겟이 되어버린 너

엄마가 미안하다

by 해피수염


”꺄아아아아아악“


문을 열자마자, 또 느닷없이 질러댄다. 놀랍지도 않다. 우리 둘째는 집 밖으로 나가기만하면 신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숫사자가 포효하며 자신의 존재를 주변에 알리듯, 고함소리로 자기가 집 밖으로 나왔음을 이웃에게 알린다. 물론 보호자인 나는 아이의 입을 강제로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롭다.






“여기서 소리 지르면 안돼, 다른 집에 다 들려”


내 목소리는 그에게 그저 배경음악이다. 늘상 듣는 거리의 새소리, 자동차 소리를 매번 인식하며 살지 못하듯, 내 음성은 그의 고막에 가 닿기에는 너무 사소하다. 그렇게 엄마 목소리를 뒷전으로 하고, 자신의 고함소리가 왕왕 복도에 울려 퍼지는 것만을 오롯이 즐길 뿐이다. 그래도 차분하게 한 번 더 이야기 해본다. 이쯤 되니 아이에게 하는건지, 주변을 향해 ’죄송해요, 하지만 나름 훈육 하고 있어요‘ 를 알리고 싶은건지, 나도 애매해진다.


“복도에서 시끄럽게 하면 안돼”

“꺄아아아아아악”


도대체 난 누구에게 얘기하고 있나. 허공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 홀로 민망함을 느낀채, 길고 긴 복도와 엘레베이터를 거쳐,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엔 멜빵 치마를 입은 어떤 엄마와, 경찰복 코스튬을 멋지게 차려입은 한 남자 아이가 잡기 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어 노는 모습이 보였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남자 아이는 경찰, 아이의 엄마는 도둑 설정으로 꽤 실감나는 놀이는 하는 중이었다. 자기 엄마랑 놀던 아이는, 또래와도 함께 놀고 싶었는지, 우리 아이에게 다가왔다.


남자 아이 손에는 장난감 총이 쥐어져 있었다. 다이소에서 파는 장난감으로, 우리 아이들도 구매했던 적이 있는 것이었다. 총알을 벽으로 향해서 쐈을때, ‘딱’ 소리가 귀에 크게 들릴 정도로, 나가는 강도가 꽤 센편 이었다. 사람을 향해서는 절대 쏘면 안된다고 단단히 아이들에게 주의를 두곤 했었던, 나에겐 긴장감이 도는 장난감 중 하나였다. 끝내는 아이들이 못미더워 잠시 이 총 장난감에 소홀해진 사이 몰래 갖다 버렸었다.


바로 그 총 있었다. 아니 근데 그걸 우리 아이를 향해 겨누는게 아닌가. 쏘려는 시늉에 놀라서 순간 내 아이를 옆으로 잡아 당겼다. 시늉만 한건데, 내가 과민 반응했나? 싶었던 찰나, 우리 바로 옆으로 총알이 떨어졌다. 시늉만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정말 우리 아이를 향해서 쐈고, 간발의 차이로 운좋게 총알이 빗겨간 것이다.


놀랐다. 남자 아이와 아이의 엄마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사과나 혹은 보여주기식 훈육이라도 하겠거니. 예상과 다르게 그 엄마는 우리 쪽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했다. 아니 오히려 웃으면서 총알을 주워갔다. 나에겐 머리 맡에서 천둥이 치는 듯한 충격이 있었지만 그녀에겐 그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 엄마는 이내 다시 해맑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다시 자신의 아이와 잡기 놀이를 이어갔다.


제 정신인가? 다른 사람이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장난에 방관을 넘어서 동조해버리는 듯한, 상식적이지 않은 모습에 화가 났다. 내 눈빛이 조금이라도 느껴지길 바라며 힘껏 째려봤다. 그리곤 혼자 씩씩대며 놀이터 투어를 급하게 종료해버렸다.


나름 살 떨리는 체험을 하고, 아파트 복도로 들어섰다. 이 순간 눈치없이 또 복도를 가득 채우는 우리 아이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악“

“엄마가 복도에서 소리 지르지 말랬지!!!”


내 아이의 행동은 조금 전과 다를게 없었지만, 나는 이전과 다르게 크게 화를 내버렸다. 그 여자의 배려 없는 모습과 내 아이를 통제 못해 이웃에 피해주는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우리는 그 여자랑 달라야하는데. 순간 부아가 났다. 터져버린 분노는 겉잡지 못하고, 아이에게 최대 형벌인 ‘궁디 팡’까지 이어져 버렸다.


아이가 엉덩이를 움켜쥐며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일순간에 밀려오는 자괴감. 그렇게까지 아이에게 화 낼게 아니었는데. 놀이터에서 만난 그 여자를 향한 분노가 애먼 우리 아이에게 전달되어 버렸다. 배려. 그깟게 뭐라고. 나는 그 여자처럼 모른척하고, 허용적인 엄마 하면 안되는건가. 아. 불쌍한 내 아가는 왜 하필 지금 내가 싫어하는 그 행동을 해서는 쓸데없이 나의 발작 버튼을 눌렀나.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순간을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멍청하게 쏟아버린 감정 표현이 후회스럽다.


”엉덩이 때려서 미안해..“


다음 날 유치원을 가려 대문을 열었다. 아이는 평소와 다르게 복도에서 괴성을 내지르지 않았다.


바라던데로 행동해 주었건만, 어쩐지 전혀 기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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