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을 돌아보며, 지금을 묻다.
‘숨밍아웃’ 시리즈 이전,
작년 여름에 지인들에게 수줍게 보냈던 기록을 다시 꺼냅니다.
지금 읽어보니,
그때의 숨이 지금의 나를 불러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글을 ‘숨밍아웃 0’으로 둡니다.
그때의 카톡을 그대로 옮깁니다.
‘부처님을 믿어보자’라고 마음먹은 시작이 뭐였을까?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그 시작엔 다름 아닌 호흡명상, 그러니까 ‘숨보기’가 있었다.
B님이 어느 날 물었다.
“코 밑을 봐서 뭐가 되지요?”
그때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아쉬움과 내 안의 진심이 대답을 찾아 나섰다.
이 글은 나의 명상을 돌아보며
숨 따라 걷고 있는 과정의 고백이다.
나의 명상 루틴
매일 아침,
물 한 잔 마시고, 부엌을 정리하고, 쌀을 씻고, 세수를 한다.
그리곤 조용히 방에 앉아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
폰으로 우리말 반야심경을 틀고,
작게 읊조리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제 숨으로 향한다.
눈을 감고, 코와 입 사이 어딘가—
숨이 스치는 경계, 그곳에 집중한다.
그곳은 내가 ‘문지기’가 되는 자리.
들숨과 날숨이 오가는 그 문을 지키기 위해
마음은 한 곳에 모이고,
생각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번뇌와 함께 걷는 길
숨을 보기로 작정한 순간부터,
머릿속은 번뇌 망상의 총집합이 된다.
아무 맥락 없이 튀어나오는 기억들, 계획들, 걱정들, 상상들.
마치 수십 개 채널이 동시에 재생되는 TV처럼,
온갖 장면들이 쉴 새 없이 흘러간다.
그럴 때마다 '앗차차, 숨!' 하며 돌아온다.
하지만 금세 또 흐르고 흩어진다.
돌아오고, 또 흩어지고, 다시 돌아오고.
그게 내 명상의 90%다.
아주 짧은 순간
어쩌다, 정말 아주 어쩌다가
1~2초 남짓한 완전한 집중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은
세상이 멈춘 듯, 소리도 감각도 사라지고,
그저 조용한 어둠 속에서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묵직한 평온이 흐른다.
그런데 욕심내면 깨진다.
'조금만 더! 이 상태를 유지하자!' 하는 순간,
다시 생각이 개입되고,
평온은 산산이 부서진다.
그래서 나는 또,
다정한 번뇌들과 손잡고 한 바퀴를 돈다.
내려놓기, 그리고 감사
그렇게 매일 연습한다.
이 순간에 불필요한 생각들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는 법.
일상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명상 안에서는 연습이 된다.
그리고 그 연습은 내 삶 전체에 영향을 준다.
마지막엔 언제나 ‘감사’가 남는다.
수행일지를 쓰며 돌아보면,
나는 늘 이렇게 적는다.
“감사합니다. 오늘이 있어서. 오늘도 숨 쉬어서.”
그래서, B님께 드리는 대답
코 밑에서 드나드는 숨을 느끼며,
저는 제 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떠오르는 것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흘려보내기도 하고,
내려놓기도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너무 멀게 느껴질 때,
저는 그저 숨 하나에 기대어 다시 나아갑니다.
그 길이 옳다고,
제 안의 고요가 말해줍니다. 감사합니다.
감로수 드림
명상의 시작은 3년이 넘었고, 위의 글은 1년이 넘었다.
지금과 뭐가 다를까, 찬찬히 읽어보니
별다를 바가 없다.
진전이 없었나? 변화는? 제자리걸음인가?
문득, ‘내가 왜 숨을 보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 이익이 뭐길래, 이렇게 맴돌고 있을까.
그래서 다시,
지금 이 자리에서 ‘숨’을 보는 이유를
천천히 숙고해보려 한다.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