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팟 허리부상
나는 웬만하면 물건을 끝까지 쓴다.
부서지기 전까진, 절대 안 바꾼다.
…단, 옷은 예외다.
나의 사회적 위상과 멋내기 욕구는 존중되어야 하니까.
반면에 그이는 충분히 쓸 만한 거라도,
더 진화된 새 모델이 나오면 여러 번의 손가락 쇼핑 끝에 장바구니를 가득 채운다.
내 왼쪽 에어팟은 중간 부분이 부러져
노란 테이프를 붙인 채 사용한 지 세 달이 넘었다.
오른쪽도 한 달 전쯤 ‘뚝’ 소리를 내며 살짝 덜렁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교체할 생각이 없다. 들리는데 아무 지장이 없으니까.
비싸게 산 지 겨우 1년 밖에 안 됐는데, 선뜻 다른 걸 사기도 아깝다.
어느 날, 그이가 큰 소리로 묻는다.
“거, 노랑색이 뭐꼬?”
“아, 이거. 부러져서 테이프 붙인 거.”
“아구, 그라면 하나 새로 사라. 그래가 어찌 듣노?”
“들리는데 아무 지장 없는데.”
“그니깐, 좋은 거 샀어야지. 니가 비싼 거 싫다 하니까 내가 그걸 골랐잖아.
싼 건 다 그렇지, 3만 원인가, 4만 원인가, 그랬재?”
순간 멈칫했다. 분명히 비싸고 예쁜 거라고 골라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밥 먹다 말고 급하게 주문 내역을 찾아본 나는
바로 들이댔다.
“봐요! 9만 원 넘는 거야. 자기가 비싸고 좋다며, 사라고 했잖아!”
“지금은 가격이 올라서 그렇지.”
“아니, 그 때도 이 가격이었어. 주문 내역에 다 있어."
“.................”
주로 이런 식이다. 그는 우기고 본다
지금도 나는 에어팟을 새로 살 생각이 전혀 없다.
테이프 붙여도 몇 달은 더 쓸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는 굳이, 자기가 사라고 권했던 그 에어팟의 부상은
“니가 하도 비싸다 하니까!” 하며 책임을 내게 돌린다.
그래야 본인의 추천이 유효하니까.
하지만 그때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1. "비싼 거다 - 여러 군데 비교 검색해서 어렵게 찾은 거라고."
2. "예쁘고 좋은 거다 - 신형이라 귀에 안 넣어도 되고, 대화하면서도 들려서 편하다고."
그런데 이제 와서 “싼 거라 그렇다”고 말한다.
내가 비싼 걸 질색해서 그나마 고른 거라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나는 탓은 안 하는 편이다.
어쨌든 산 거고, 누가 사라 했든 불만을 쏟아내진 않는다.
결정장애인 나를 대신해 선택해준 거니까.
게다가... 부러뜨린 건 나니까.
그래서 오히려 더,
테이프라도 붙여서 오래 쓰려는 건데…
그런데 왜 저리 흥분해서 외치는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알다가도 모를 그의 속내, 아실랑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