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배우는 몸

처음을 기억하며

by 화니

전정신경염 발병한 지 거의 한 달.

이제는 집 앞을 20분쯤 산책할 수 있고, 근처 식당에서 외식도 할 수 있다. 이 정도도 아주 감사하고, 기대를 품게 하는 회복이다.


그런데, 걷는 게 이렇게 어려운 움직임이었다니.

탁 트인 공간과 익숙한 길에서도, 나는 일부러 주변을 외면하고, 눈은 땅바닥이나 정면만 본다. 지나가는 사람과 차를 바라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건널목 앞에 서면 불안하다. 좌우를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일이 이렇게 힘든 동작이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제야 안다.

직립보행이란 단순히 걷는 행위가 아니라, 뇌와 몸이 수천 번의 신호를 주고받으며 이루어내는 인체의 경이로움이라는 걸.

걷는다는 건 곧 ‘살아 있음’ 자체였다.


요즘의 ‘숨보기’는 누워서 한다. 고개를 들거나 등을 곧게 세우는 게 여전히 힘들어 편안한 가부좌도 어렵다.

그래서 여러 번 마음을 내어 누운 채로 숨을 보려 해 보지만, 잠드는 게 반, 몸을 뒤척이다가 중단하는 게 반이다.


자세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간혹 의식이 코 밑으로 내려가는 걸 알아차릴 때가 있지만, 곧 속이 불편해지거나 몸이 어질어질해서 좀처럼 집중이 이어지지 않는다.


명상의 방해물은 번뇌나 망상도 있지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야말로
더 큰 장애임을 절실히 느낀다.


요약하자면,

지금의 나는 누워 있다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해 일상의 모든 움직임을 겨우겨우, 조심조심, 아주 천천히 조절하며 살아가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는 건 막을 수 없다. 그 생각들을 글로 옮기려는 시도도 여러 번 했지만, 그 역시 ‘뇌’의 고차원적인 활동이라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의 제동에 가로막혔다.


생각은 넘치는데, 몸이 받쳐주지 않아, 결국 마음은 육체에 끌려다녔다. 지금은 복귀를 위한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모든 감각을 절제하며 살피고 있다.


그래도 매일매일, 전정신경 회복을 위한 재활로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

뇌가 다시 균형을 ‘학습’하게 돕는 운동들—시선 이동하기, 고개를 좌우·상하로 움직이기, 일어서고 앉기, 한 발로 서기, 눈 감고 서기, 고개를 돌리면서 직선으로 걷기.


이게 무슨 운동일까 싶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지금의 어지럼을 없애고 균형을 되찾게 하는 최고의 회복 운동이다.


이 과정을 통해 배운다. ‘숨’이란 몸과 마음의 건강한 협업으로 생겨나는 에너지라는 걸. 인체의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작동하며 그 흐름을 지탱하고 있다는 걸.


그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숨 보러 가는 길’은 멀어지고,
‘숨 보기’는 한층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일시정지를 ‘쉼’이라 부르며 위안 삼는다. 그리고 내일의 숨을, 또 새롭게 만나러 갈 거다.


숨을 보려 한 처음의 긴장과 설렘을 가지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숨을 배우는 몸으로 다시 일어서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