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고 고맙다!
감각의 깨어남이 기쁘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하다. 이 이중적 감정은 뭘까? 그 답을 찾으려 써본다.
전정신경염 이후로 한동안 몸이 흔들리면서 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오감은 급격히 둔해졌고 감정의 색감도 흐려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예쁜 꽃을 봐도, 감미로운 음악을 들어도, 화려하게 차려낸 음식을 맛보아도 크게 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고요가 편안했다. 세속적 욕망이 옅어지니 마음이 잔잔했다. 오히려 숨보기에 더 정진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감각이 옅어지는 만큼 마음은 맑아지고, 생의 속도는 차분해지고, 삶은 더 수행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솔직히 말하면, 맹숭맹숭한 날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괜찮다고 여겼다. 무탈했고 거슬림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늘 나의 원픽 가수 박창근 콘서트에서, 온몸과 마음으로 만들어낸 그의 부드럽고도 거센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또렷하게 반응했다. 오래 잠들어 있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하고 움직였다.
식어가던 감성이 다시 도약했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생동감이 되살아났다. 고요는 편안했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은 이렇게 벅찬 것이었구나.
순간 불안도 스쳤다.
이건 뭐지? 아직 멀었다는 신호인가?
수행이 뒷걸음치는 건가? 마장(魔障)인가?
세상의 감각을 놓지 못하는 미숙함인가?"
의문이 연달아 올라왔다.
하지만 숨을 고르고 바라보니 분명해졌다. 지금 이 경험은 후퇴가 아니다. 감각은 죄가 아니고,
문제는 감각이 아니라 집착이다.
감각은 피할 대상이 아니라 다만 알아차릴 대상일 뿐이다.
예술 감상은 인식의 확장이자 유연성의 획득이며 관점의 진화라는 어느 평론가의 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음악에 흔들리고 감동하는 것,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삶의 움직임이다. 다만 그 감각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수행이다.
나는 오늘 다시 배운다.
수행은 세상을 회피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과 다르게 만나는 법이다. 감각을 억누르는 길이 아니라, 감각에 휩쓸리지 않는 길이다.
오늘 나는 노래를 들으며 生의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쁨 위에서 다시 평온도 느꼈다.
감각은 왔다가 가고, 마음은 흔들리다가 고요해지고,
나는 그 모든 흐름을 지켜본다.
감각 속에서도 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신기할 뿐이다.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