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맘.글, 다시 시작

멈춤과 출발 사이에서

by 화니

몸과 마음, 그리고 글.

이 셋은 모빌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느 하나라도 기울면 나머지 둘도 함께 흔들린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흐트러지면 글도 사라진다. 결국 이 세 가지는 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움직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셋을 나의 트리니티(Trinity)라고 부른다.


전정신경염으로 한동안 몸이 휘청거렸을 때, 마음은 중심을 잃었고 글도 멈췄다. 시간이 지나 몸의 온전함이 돌아오자 마음이 제 방향을 찾기 시작했고, 멈춰 있던 글도 다시 꿈틀거렸다. 셋이 제자리에 돌아온 듯하다. 다행스럽다.


그런데 이상하다. 출발선 앞에 서 있는데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방향도 알고 가야 할 길도 분명한데, 나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잠시 멈춰 서 있는 지금이 오히려 낯설고 불편하다. 예전 같으면 이미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지금 ‘넘어온 봉우리’와 ‘다음 봉우리’ 사이에 서 있다. 회복과 변화 사이의 경계, 멈춤과 출발이 겹쳐 있는 능선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음을 나는 이제 안다. 조급함이 올라오면서도 게으름이 고개를 들고, ‘뭘 해야 한다’는 내면의 압박과 ‘굳이 지금 안 해도 된다’는 멀어지기가 동시에 나를 흔든다.


그러나 이제 다르게 본다. 이 시간도 길의 일부라는 것을. 삶에는 전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머무름과 숨 고르기 역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걸. 계속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다. 잠시 서 있는 시간도 다음 걸음을 위한 준비가 된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지금은 정체가 아니다. 통과하는 중이다.

나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 다시 호흡을 고르는 시간이다. 이렇게 인정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급함은 욕심이었다. 빨리 가야 한다는 강박, 늘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습관. 그게 또 나를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안의 오래된 패턴—‘무언가를 해야만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이 다시 올라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흔들리든, 멈추든, 나아가든, 다를 바 없다.

나는 다만 그 모든 흐름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 어렵던 글귀가 문득 다가왔다.

諸行無常 諸法無我 (제행무상 제법무아)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붙잡을 ‘나’ 또한 없다.


이쯤에서 하나 선명해진다.

내가 나라고 믿어온 것들—몸(色), 감정(受), 생각(想), 행동(行), 그리고 마음(識). 그러나 가만히 보니 그것들은 모두 변하고 흘러가는 것들이었다.
그저 모였다 흩어지는 다섯 무더기일 뿐.
그중 어느 것도 고정된 ‘나'가 아닌데도
나는 그것을 붙잡고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면 글은 멈칫했다. 그러자 '나다움'이 무너질까 조바심이 났다. 그게 다 집착이었다. 나는 몸·맘·글을 너무 ‘나’와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집착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중심은 더 단단해지고,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는 걸.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래서 다시 숨을 본다. 숨은 언제나 불안한 나를 제자리로 데려온다. 어지러운 마음의 먼지를 가라앉히고, 나를 자유롭게 나아가게 한다. 지금 나는 다음 봉우리로 가기 위한 길목에 서 있다. 멈춰 있는 이 시간도 괜찮다. 아니, 소중하다. 멈춤도 길이니까.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몸·맘·글, 다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균형을 잡으며 조심조심 한 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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