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내 마음이 길을 밝힌다
지난 금요일, 미우서재에서 초대한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의 오은 시인과
『천천히 와』의 유희경 시인이 함께하는 북토크에 다녀왔다.
두 사람은 20여 년 지기 동인이자 절친이라 했다. 서로의 문장을 속속들이 아는 사이답게, 대화는 막힘이 없었고, 유머와 위트 너머로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과 신뢰가 묻어났다. 두 시인은 때로 장난스럽게, 때로 진지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함께 나눠온 '글'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은 시인은 유연하고, 재능 있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감으로 가득하면서도, 밤에 차오르는 사람이었다. 유희경 시인은 깊고 단단했다. 그가 운영하는 서점의 서가에 늘어선 시집처럼, 떨림을 품고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두 세계를 보며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그들의 오랜 시간 앞에서 나의 짧은 길이 조용히 드러났다. ‘나의 세상은 참 좁구나. 내가 가야 할 길은 참 멀구나.’ 독서량도, 시야도, 자존감도, 다 모자라 보였다. 몸이 무거워지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보며 괜히 초라해지고, 자신을 깎아내리며 작아지는 순간.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나는 그 마음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붙잡지 않고, 몰아내지도 않고, 그저 거기 있는 대로 두었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몸에서 몸을 보고, 마음에서 마음을 보라.
이 말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아서, 적어본다.
몸에서 몸을 본다는 건,
숨이 드나드는 자리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다.
‘숨’ 즉, 바람 같은 공기의 흐름을 느끼면서, 그 자리를 스치는 순간에 의식을 집중시킨다. 그걸 그냥 알고 있는 상태. 해석도 판단도 없이, 그저 바라보는 일이다. 생각은 끼어든다. 바로 그 순간, 다시 돌아온다. 숨은 여전히 오고 가고 있다. 그걸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스스로를 이끄는 작은 불빛처럼 느껴졌다.
마음에서 마음을 본다는 건,
우울감이 나를 누를 때, 비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또 다른 내가 바라보는 것이다.
"아, 지금 나는 움츠러드는구나.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구나. " 그렇게 알아차리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느슨해졌다. 그 마음을 달래거나 이겨내려는 게 아니고, 그냥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마음. 그렇게 두 마음이 나란히 있다.
왔다 갔다 해도 괜찮다. 숨을 따라가다가 마음이 끼어들고,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숨으로 돌아온다. 이건 흔들림이 아니다. 이건 교차로에서의 망설임이 아니다.
이건 흐름이다.
몸과 마음이 서로를 비추는
하나의 흐름.
서로 다른 듯 닮은 한 길 위의 두 발자국.
감정은 계속 생기고, 마음은 여러 갈래로 뻗는다. 비교에서 시작된 열등감도, 존경이 만들어낸 위축도.
하지만 그런 마음은, 시간 속에서 흩어지고, 붙잡지 않으니까 사라진다.
마치 파도가 쉴 새 없이 부서지듯.
그 흐름을 따라가며 작지만 무겁게 읊어본다.
아, 일어났구나. 지금 머무는구나.
이제 사라졌구나.
그제야 북토크에서 느낀 마음이 보였다.
그건 부끄러움이라기보단,
‘나도 더 깊고 넓어지고 싶다’는 갈망이었을 것이다.
그 갈망조차, 잠깐 머물렀다가 흩어질 마음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따라가지도 않았다.
그저 지켜봤다.
그러니 그것이 나를 삼키지 못했다.
오히려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타인의 인연은 그들의 것이고,
나의 인연은 지금, 내 발아래에서 피어나고 있다.
나는 거기에 서 있다.
불완전한 마음을 이끄는 그 길을 따라 걷는다.
그래서 오늘의 다짐은 이렇다.
기준은 나다. 남이 아니라, 나의 마음.
불안도, 탐욕도, 부러움도
모두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그걸 알고서, 흐릿하지만 분명한 빛을 따라가면 된다.
그저 내가 옳다고 믿는 일,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해 내면서.
그리고 내일 아침,
혹시 이 우울이 사라졌다면
나는 그때, 조용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있었지. 없어졌구나. 괜찮아졌다. 이 마음이 나를 깨웠구나.”
아직은 어둡고, 어쩌면 다시 흐려질지도 모르지만,
내 마음이, 아주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더 천천히 숨을 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