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시인의 『천천히 와』

한 달음에 읽으며

by 화니

읽는 동안 내 마음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움직이는 책이 있다. 유희경의 『천천히 와』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그의 산문은 시인 특유의 느린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았다. 사람과 사물, 감정과 시간이 그의 문장 안에서 천천히, 미세하게 움직인다.


단어 한 조각도 허투루 쓰지 않는 그의 문장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나 또한 나의 일상과 감정, 그리고 마음이 닿는 단어들 곁을 자연스레 서성거리게 되었다.


겉으로는 ‘줄글’이지만, 읽다 보면 이 산문집 안에는 이미지와 정서가 은근하게 부풀어 오르는 시의 리듬이 숨어 있다.


어떤 사물에 마음이 꽂히면 그 단어의 껍질을 벗기고,

그 의미를 오래 씹어보고,

그 주변을 천천히 맴돌다가,

결국 독자에게까지 번져오는 울림을 남긴다.


이 방식이 내 마음과 너무 닮아 있어서,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묘한 친밀감이 생긴다.


특히 ‘냄새’에 관한 글에서 멈칫하게 되었다. ‘향기’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멀고,

‘냄새’라고 부르자니 덜 예쁜 그 미묘한 결.

나도 늘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답답했는데,

그 역시 똑같이 고민하고 있었다.

“이건 좋은 향도, 나쁜 냄새도 아니다. 다른 단어가 필요하다.” 그의 이 말에 무릎을 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세상에는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과 감각이 분명히 있고, 우리는 그것을 설명할 언어를 아직 갖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가 조용히 일러주는 듯했다.


책의 제목처럼 “천천히 와”라는 말도 오래 남는다.

내게 종종 장난처럼 들리던 그 말(누군가의 ‘천천히 와, 근데 좀 서둘러’)은 시인의 문장에서는 전혀 다른 결로 다가온다.


늦어도 괜찮다고 말하며,

언제 까지든 그 자리에 있어주는 섬 같은 존재.

기다림을 초조해하지 않고, 외로움에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의 리듬대로 살아내는 평온한 삶.


그 모든 마음을 담아,

그는 ‘천천히 와’를 그렇게 쓴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넘길수록 속도를 내기보다,

오히려 더 천천히 읽게 되었다.

한 줄 한 줄, 마치 내 마음에서 나온 듯한 문장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서.

그의 글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아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 같기도 하고,

새롭게 통하는 사람을 만난 것 같기도 했다.


책을 덮고 나니, 그가 쓴 다른 글(시든 산문이든)도

읽고 싶어졌다.

그의 마음이 어떤 단어에 머물렀는지,

어떤 사물 앞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순간에 글이 피어올랐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알아가고 싶은 마음,

배우고 싶은 마음,

그리고 따라 써보고 싶은 열망이

조용하게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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