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랑켄슈타인>과 <The Shape of Water>를 보고
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새로 공개된 영화〈프랑켄슈타인〉을 봤다. 무섭고 잔인하고 혐오스럽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절대 내 취향이 아니다.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넘기다가 Top 1이라는 커다란 화면이 눈에 걸려 그냥 눌러본 것뿐이다.
그런데 의외로 몰입되었다. 공포가 아니라 서사가 있었다. 옛날이야기처럼 술술 풀렸고, 그 속에는 인간의 존재와 본성, 태도와 인간성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가 줄줄이 숨어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두려움과 공포는 별로 없었고, 오히려 사랑, 자비, 배려의 마음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가 말하는 건 단순하다. 선과 악은 타고나는 속성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마음을 마주 하느냐에 따라 존재는 선해지기도, 거칠어지기도 한다. 결국 존재는 상황과 관계 속에서 끝없이 바뀐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느냐에 따라 그도 변하고, 그 변화는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괴물의 공포가 아니라 인간 조건(the human condition)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라고 해석한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존재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결국 그가 어떤 태도와 시선을 만나느냐에 달려 있었다.
자신의 이상에 매몰되고, ‘통제하려는 욕망’을 실현해 창조자가 되고 싶었던 과학자 빅터가 만든 ‘괴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그 대신, 괴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거울처럼 반응했다. 폭력과 위협을 받으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격을 가하고, 다정하게 다가오면 그 마음에 응답하듯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건넸다. 힘과 에너지, 치유와 파괴. 그의 초능력은 그가 만난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건 인간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아군이 되기도, 적이 되기도 한다.
결국 상대의 모습은, 내가 끌어낸 것이다. 세상의 반응은 거울처럼 돌아오고,
그 시작점은 언제나 내 마음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서 감독이 궁금해 찾아보니,〈The Shape of Water〉의 기예르모 델 토로였다.
이 영화로 2018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인물이다.
그래서 이어서 그 영화도 보았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같은 ‘양서류 인간’이 등장한다. 모습은 사람과 비슷하지만 말은 못 하고, 연구소에 붙잡혀 실험 대상으로 취급되는 생명체다.
그런데 말은 하지 못하지만 들을 수 있는 청소부 일라이자와는 수화와 음악, 그리고 선한 마음으로 소통한다.
반면 그를 해치려는 연구소의 스트릭랜드는 장애인, 소수자, 약자를 비겁하게 짓밟는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전형적인 악인으로 그려진다. 보고 있으면 역겨울 정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비현실적 이야기를 사람들이 왜 보지?”
“이게 무슨 플롯이지?” 이런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그런데 결말이 가까워질수록, 이야기가 얼마나 말이 되느냐보다 이 괴물과 양서류 인간이라는 '존재'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인간의 내면(본성), 그리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에 대한 깨달음.
“될까? 안 될까?” “진짜일까? 아닐까?” 이런 건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의심은 존재를 무게 재듯 저울에 올리지만, 존재는 그 자체로 완결된 어떤 것이다.
우리는 늘 '인간다움'이라는 이상을 붙잡으려 한다.
그게 뭔지도 모른 채.
그저 '존중'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언가를 갈망하며.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 속 양서류 인간이 보여줬다.
존중엔 사랑으로 반응하고,
멸시엔 고통으로 응징한다.
사람이든 괴물이든 그 실체는 다르지 않다.
그저 being, 존재일 뿐이다.
구별하는 건 우리의 머리와 마음이다.
어느 영화 비평가는 이 작품을
“다름(otherness)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그 말이 무척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일라이자가 그 생명체를 대하는 태도는 정확히 그런 마음이었다. 거기에 사랑이 더해져서.
오늘 아침, 앉은 자리에서
코 밑을 스치고 지나가는 숨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앞에 동굴의 입구처럼 생긴 자리가 열리고, 그 안에서 하얀 뭉치들이 들숨과 날숨에 맞춰 커졌다가 작아지고, 밝아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고요한 움직임 사이로 어제 본 영화가 조용히 들어와 있었다. 두 영화가 던진 메시지와 그 순간의 호흡이 묘하게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이다.
결국 영화도, 숨도 이렇게 말한다.
있는 그대로 보고, 선한 마음으로 대하라.
그러면 세계는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