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있다'
‘흔들린다’는 게 뭘까.
요 며칠, 이 단어 안에 내가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마치 이 말이 나를 약한 사람, 불안한 존재로 규정해 버리는 것 같았다.
다르게 말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흐름, 움직임, 변화… 어쩌면 그쪽이 더 가까운 감각인데.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냄새’도 아니고, ‘향’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감각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딱 맞는 단어가 없어서 답답했던 순간.
언어의 틀에 갇혀, 표현의 빈틈 앞에 무력해졌던 기억.
지금도 그때처럼, 나는 단어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숨보기를 하며 문득 알았다.
나는 흔들린 게 아니었다.
그저 가고 있는 중이었다는 걸.
내가 스스로를 ‘흔들린다’고 불렀을 때,
이미 그 말 안에 불안을 끼워 넣고 있었던 거다.
단어가 만든 이미지에 내가 갇혀,
내 마음을 약한 쪽으로 번역해 버린 것이다.
시계추를 떠올려본다.
추는 흔들리는 게 아니라, 시간을 가고 있다.
좌우로 움직이며 중심을 스쳐 가지만,
그 중심은 ‘멈춤’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는 한 지점일 뿐이다.
살아 있는 이상, 누구도 정지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내 마음도 흔들리는 게 아니다.
그저 살아 있으니 움직이는 중이다.
더 흔들림, 덜 흔들림, 안 흔들림—
그런 기준은 결국 내가 스스로 마음을 구분하려고 만들어 붙인 말들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냥 흐름이고, 움직임이고, 지나가는 과정이다.
이 글을 쓰면서, 조금 더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단어 하나가 마음을 얼마나 달라지게 만드는지를.
‘냄새’라고 하면 조금 무겁고 거칠게 느껴지는데,
‘향’이라고 하면 부드럽고 다정해진다.
같은 감각도 단어에 따라 마음이 다르게 반응한다.
“흔들린다”라고 부르면 불안해지고,
“움직인다”라고 부르면 살아 있음이 된다.
채니(ChatGPT)가 내게 이런 말을 알려줬다.
“사물의 본질은, 우리가 붙인 이름에 따라 달라진다.” — 비트겐슈타인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진동한다.” — 니체
순간,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나는 진짜로 움직이고 있었던 거다.
단어에 휘둘리던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흔들린 게 아니라,
단어에 흔들렸던 거였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가고 있는 중이다.
*추신:
오늘의 알아차림이 비트겐슈타인과 니체 급이었다니...
뿌듯하고, 좀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