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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격조높고 흥미진진한 암투극<콘클라베>

by 스타맨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전 세계가 차기 교황 선출로 떠들석하다.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의 비밀회의인 콘클라베(Conclave)에 참석하기 위해 추기경 선거인단 133명이 모두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다고 한다.(5.6일자 뉴스)

지난 3월,영화 <콘클라베>를 봤을 때 교황의 건강이 심상치않았었는데 ,한달만에 콘클라베를 앞두고 있다니....뒤늦게나마 이 대단한 영화의 후기를 적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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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뜻'이 아닌 '나의 뜻'

영화는 교황 선종 후 전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채 교황이 선출될때까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안에서 비밀투표를 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한 명이 2/3를 득표할 때까지 투표가 계속된다)

이 과정은 성당의 웅장한 대리석,그들이 걸친 붉은 사제복과 묵직해보이는 십자가 목걸이만큼이나 경건하고 거룩하며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속은 다르다.완벽히 .

시작은 '신의 뜻'에 걸맞는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기도하지만,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의 뜻'에 부합하는 교황을 뽑기 위해 조바심 낸다.

교황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 각자의 탐욕을 엿볼 수 있다.벨리니 추기경은 가난한 지역에서 활동하며 개혁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트렘블레이 추기경은 기존 교황청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또 아데예미 추기경은 젊고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아프리카 출신으로,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이들이 서로 연합하는 듯 하다가도 경쟁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수군거리며 날선 공격까지 마다않는 광경은 한 편의 '정치 암투극'을 보는 재미를 준다. 나중엔 이들의 신념이나 권력에의 의지가 신앙심의 발로인지 무척 의심스러워진다.무려 '교황'도 어쩔 수 없군이란 생각이 든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미장센과 더불어 긴장감 넘치는 편집(투표장면이 이렇게 '스릴러'같을줄이야 .. ) ,신경쇠약 직전처럼 들리는 현악기의 사운드를 통해 이 암투극의 완성도를 높인다.정말 놀라운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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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선거를 이끄는 단장인 주인공 로렌스(랄프 파인즈) 는 유력한 후보들을 둘러싼 비리와 음모가 드러나면서 혼란에 빠진다.관객들은 로렌스의 입장에 감정이입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르는 결말은 정말 충격적(!)이다.( 하지만 난 솔직히 이 결말이 마음에 들진 않는다.놀라운 반전이긴 하지만,너무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된 결말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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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영화에선 추기경뿐 아니라 수녀들의 존재가 중요하게 다뤄진다.추기경들이 '큰 일'을 하는 동안 수녀들은 성실한 도우미처럼 식탁을 정리하고 식사준비를 한다. 수녀는 사제들의 그림자처럼 그저 조용히 존재할 뿐이다.추기경들의 공간과 이미지는 온통 붉은색으로 열정과 깊은 신앙심을 대변하지만 수녀들은 푸르거나 검은 색으로 대비되는 것도 그런 상징이다.

하지만 수녀 아그네스(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존재는 좀 다르다.그녀는 묵묵하긴 하지만 추기경들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있으며 이 비밀이 교황 선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올랐던 이자벨 라 로셀리니의 분량이 성에는 차지 않았다.존재감은 분명 있었지만 그녀가 '연기'라는 걸 제대로 보여줬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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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신의 뜻은 무엇일까?

전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이며 비밀스러운 곳이 '교황청' 이 아닐까한다.하지만 이 영화는여러 도전에 직면한 교황청의 민낯을 보여준다.카톨릭 내부 보수와 진보의 갈등,성정체성과 동성애 수용의 문제,그리고 교회내의 여성의 역할등이 그것이다.

신앙심이 깊은 원칙주의자인 로렌스가 예상치 못한 인물이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보여준 당황스럽고 복잡한 감정을 통해 우린 질문하게 된다.과연 '신의 뜻'은 무엇인가.인류는 어떤 교황을 갖기 원하는가?!


'콘클라베'가 끝나면 성당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고 한다.

신임 교황은 누가 될까? 더 정확히는 어떤 '성향'의 인물이 될까?

영화 <콘클라베>를 본 관객이라면 바티칸에서 지금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이 과정을 완벽하고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현재 32만명이 관람했는데 아직 상영하는 곳이 남아있으므로 꼭 '극장에서'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참고로 랄프 파인즈는 이 영화로 97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브루탈리스트>의 에드리안 브로디에게 밀렸다.두 작품을 다 본 나로서는 랄프 파인즈의 세번째 도전이 실패로 끝나 많이 아쉽다.

(에드리안 브로디도 물론 잘했지만,그의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 수상작인 <피아니스트>와 <브루탈리스트>가 겹쳐보이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랭크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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