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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맨 Feb 08. 2024

<타르>-추락한 예술가에 관한
   불편한 진실들  

<타르>는 ,

지난해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관람했다.(감독 :토드필드 / 주연 :케이트 블란쳇(2023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

그저 킬링타임용 영화가 아니기에 관람후에 후토크가 절실한 영화다.


<타르>는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어느 여성 지휘자의 성공과 몰락에 관한 전기영화',가 아니라 '자의식으로 부풀어오른 어느 소시오패스 여성 지휘자의 싸이코 심리 드라마'에 가깝기 때문이다.

( 영화 포스터에서 지휘봉을 잡은 채 잔뜩 부풀어오른 주인공 타르의 가슴은 그녀의 거대한 자의식을 상징하는 것 같다)

리디아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여성 ‘마에스트로’이자 권력과 야망의 화신,레즈비언,결정적으로 권력형 성추문의 가해자이다.



리디아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타인을 모함하고 젊은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며 음악계안에서 기회를 주었다 한순간에 빼앗기도 하는 등 착취한다. 

이것이 케이트 블란쳇의 매혹적인 연기에 빨려 들면서도,마음을 묘하게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다.

그간 매스컴에서 고개 숙인 남성 '권력형 성 범죄자'들은 많이 봐왔지만,'여성'이 성범죄의 가해자라니,그것도 전세계적으로 '한줌'도 안되는 '여성 지휘자'를 주인공으로 말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과의 협연으로 국내팬에게도 잘 알려진 '마린 알솝' 대형 오케스트라 여성지휘자,레즈비언,레너드 번스타인을 추앙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타르의 모델이라고 (잘못 )알려졌었다.

마린 알솝은 이 영화가 '반여성적'이고 '여성 지휘자가 영화 주인공이된 기회를 성범죄 가해자'로 만들어 '가슴이 아프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에대해 "<타르>는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권력이 부패의 본질'이다"라는 해명을 내놓아야했다.

(여성인) 나 역시 '묘하게'불편한 것도 사실이지만,케이트 블란쳇의 말에 조금 더 수긍하는 입장이다.

이 세상에 권력을 가진 자들이 남성이 많아서이지,권력의 속성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간을 괴물로 만들기 십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파울루 주립교향악단 수석지휘자 마린 알솝)
(마린알솝과 곱슬머리 휘날리는 임윤찬)

영화 속에선 중요한 한 장면이 있다.

한 남학생이 자기는 “유색인종이고 팬젠더(남녀 이분법을 벗어난 성 정체성)로서, 백인 남성이자 여성혐오적인 삶을 산 바흐에 흥미가 없다”고 하자 리디아가 그를 조롱하며 몰아붙인다. 리디아는 작품과 작곡가의 삶을 동일시해서는 창작의 폭을 넓힐 수 없다고 주장한다.결국 남학생은 울면서 강의실을 뛰쳐나간다. 이 장면에서 리디아는 인터넷 세대를 지배하는 캔슬컬쳐 ( 정치, 예술가의 도덕성을 빌미로 그의 업적 전체를 지워버리는것) 에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 그러다 결국 자신도 ‘캔슬’ 당한다.자신도 영화후반으로 가서 자신이 저지른 과오로 인해 몰락해가는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쫒겨난 후 리디아는 먼 길을 떠나 동아시아의 어떤 곳으로 흘러들어간다 .

리디아가 찾아간 어떤 마사지숍은 성매매를 하는 곳으로 추정되는데,그 곳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번호를 단 젊은 여성들 중 하나가 통창 안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리디아는 그 곳을 빠져나와 구토를 한다.

수치심을 모르던 잘나가던 백인 여성이 마침내 자신의 민낯을 목도하는 것일까.그런데 그것이 꼭 어느 아시아의 어린 여성들을 성적으로 전시해놓은 장면으로 설명되어야할까.

여기서 (아시아인인)나는 또한번 불편함을 느꼈다.


그리고 충격적인 영화의 엔딩씬.

리디아는 코스플레이어(게임캐릭터로 코스튬한 사람들)를 한 관객들을 앞에 두고 인기게임 <몬스터 헌터>의 사운드트랙 녹음을 지휘하고 있다.이 기묘한 장면은 리디아는 '완벽하게'몰락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또 묘하게 불편한 질문이 스멀거린다. 

서구 백인사회에서 '캔슬'된 리디아가 아시아에서 게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게 완벽한 몰락이자,벌일까.

그렇다면 감독은,클래식은 우월하고 게임음악은 저급한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는걸까,아닐까.그렇다면 리디아가 그토록 강조한,개인의 얼룩진 사생활로도 해칠수 없는 '완전무결한 음악'이란 또 무얼까. 예술가의 도덕성및 사생활과 그의 창작물은 필연적으로 하나로 봐야하는 것인가,분리해서 봐야하는것인가.

( 언뜻만 떠올려도 온갖 범죄에 연루돼 몰락하거나 지탄을 받은 예술가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는가.)

정말 끝까지 애매하고 모호하며,여러가지 질문들을 던지는 영화다. 


결론을 얘기하면 ,

나는 이 영화를 무척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이 영화가 흥미진진할 수 있었던 건,강하고 고결하며 도도하고,파괴적이며 신경증적이고 잔인한 한 권력자 여성의 얼굴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낸 '케이트 블란쳇'에게 90%정도의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 누군가가 케이트 블란쳇에게 '금가루를 뿌린 듯한 '연기력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이다)

그리고 모호하고 불편한 질문들을 우리에게 마구마구 던져준 토드 필드의 각본력과 연출력이 또 한몫한다.


계속 머릿속을 휘젓는 질문들을 곱씹게되는 영화를 보고싶다면,강추한다. 


내 맘대로 랭크 : A  (★★★☆)  (케이트 블란쳇 팬이라면 못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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