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지독한 쾌락을 위해 마약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사실은 통증을 줄이기 위해 약을 먹다가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이 때 처방되는 진통제는 타이레놀과는 다른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Opioid)이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방영하고 있는 <돕식(Dopesick) -약물의 늪>은 그에 관한 실화다.(돕식은 약물중독이란 의미다) 드라마는 2021년작으로 총 8부작이다.(주연 : 마이클 키튼)
● 줄거리 및 리뷰
'옥시콘틴(Oxy Contin)'이란 약물은 45만 명 이상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이 사태의 중심엔 퍼듀 제약이 있다. 퍼듀 제약은 1995년 부터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제조, 판매해왔다. 옥시콘틴은 극강의 중독성이 있었다. 중증의 환자에게만 처방되어야 하는 약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신약개발에 든 천문학적 돈을 거둬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퍼듀는 거짓말을 한다.거짓말을 위해 FDA(미국 식품의약국)를 매수한다. FDA는 ' 중독성이 약하다'는 라벨을 붙여주는데,그 라벨을 허가해 준 FDA직원은 곧장 퍼듀 이사로 이직해 초고액 연봉을 받는다.
FDA직원의 미래직장이 제약회사인거다. 빌어먹을 전관예우다.(진심 쌍욕 유발 드라마다)
이제 '만능 라벨'을 득템한 퍼듀는 공격적인 마켓팅을 위해 판촉사원들을 모집하고 판매량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또한 내성이 생겨 약효가 떨어지면 '돌발통증'이란 헛소리로 복용량을 계속 늘리도록한다.
제일 먼저 퍼듀가 노리는 먹잇감은 약자들이다.광산이나 농,어업,벌목등 육체노동을 하는 곳에선 부상이 잦을수밖에 없고 이들에겐 진통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곳 중 하나인 버지니아의 시골 마을에서 광부들이 아프고 다치자,마을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봐온 홀아비 의사 피닉스(마이클 키튼)는 돈독 오른 판촉사원으로부터 소개받은 옥시콘틴을 처방하고,환자들은 금새 중독된다.
이제 약이 없으면 더 큰 통증때문에 미칠것같은 사람들은 약을 찾아 병원 쇼핑을하고 약국을 털거나 몸을 팔며 급기야 다른 약물에까지 손을 댔다가 사망하기에 이른다.옥시콘틴의 약효(?)가 소문이 나자 미국 전역의 십대들은 옥시콘틴을 코카인이나 헤로인같은 마약보다 더 선호하게 된다. 마침내 의문을 품은 지역 연방 검사들이 나선다. 드라마는 거대한 제약 재벌 새클러 패밀리와 이에 맞서는 마약수사국(DEA),연방검사,의사,내부고발자,피해자 가족들의 서사를 오간다.새클러의 필살기는 '돈으로 매수하기'이고 '정의'로운 이들은 하나씩 나가떨어진다.새클러는 마치 뱀의 혀를 가진 골리앗같다.
마음이 아팠던 건, 피닉스(마이클 키튼)가 교통사고를 당한후 똑같이 옥시콘틴에 중독되는 상황이다.중독된 의사는 옥시콘틴 중독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돌볼 새도 없이 같은 지옥 속에 살게 된다.
피닉스가 어느 날은 약에 취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환각을 본다.
두 사람이 함께 듣던 음악을 들으며 그 '환각'과 함께 춤을 추는 씬은 너무 슬프다.
이 드라마는 피 튀기는 장면도 ,찢어지는 총성도 없지만 마치 <시카리오>를 볼 때처럼 간담이 서늘하다. 시골마을의 청년들이 옥시콘틴 중독으로 차가운 땅바닥에서 죽어나갈 때 궁궐같은 저택,고가의 명화에 둘러싸인채 누가 얼마나 죽건간에 '어떻게하면 더 많은 약을 팔까!'라고 악전고투하는 새클러 패밀리들의 영혼없는 얼굴들은 웬만한 귀신보다 더 소름끼친다.
퍼듀 제약은 현재 어떻게 됐을까?엄청난 소송전이 계속된 이 사건은 미국 법원이 5조원대 배상 판결을 했지만 2019년 퍼듀는 그냥 파산해버린다. 재산은 해외에 빼돌린 뒤다.새클러 가문은 최근 약 8조 원의 치료 프로그램 기금을 내는 조건으로 옥시콘틴 사태의 법적 책임을 더 이상 지지 않게 됐고, 퍼듀 제약을 대신 할 새 제약사도 차릴 수 있다.골리앗의 승리다. '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만고의 진리다.
양귀비에서 진액을 추출한 아편은 모르핀이 되고 모르핀은 헤로인으로 바뀐다.
그리고 모르핀보다 약효가 50~100배 이상인 펜타닐은 무려 얀센이 개발한 오피오이드 진통제다.
유투브발 미국 필라델피아의 켄싱던 거리를 워킹데드의 세상으로 만든 그 펜타닐 말이다.
지난 10월 사망한 '챈들러 빙' 매튜 페리도 약물 중독자였다.제트스키를 타다 부상을 입어 복용하기 시작한 진통제 '바이코딘'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지난 21년엔 우리나라의 10대들 40여명이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아 피우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나는 이 뉴스기사를 최근 찾아보고 다시한번 놀랐다!다른 나라 아니고 우리나라다.)
십대들은 패치를 '쉽게' 처방해준다는 병원들을 뱅뱅 돌며 가짜 통증을 호소했다.그렇게해서 남은 패치는 비싼 가격에 되팔아 더 많은 패치를 사는데 썼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봤던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의사를 믿고 약을 믿은 사람들이 약때문에 죽어가는 호러블한 세상,페인 킬러가 아니란 휴먼킬러,'약'에 대한 지독한 경각심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때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문득 내 약통을 보니 온갖 소화제니 진통제,감기약,알러지약등이 한가득이다.
'아프니까 중년'이지만,한동안 약통을 볼때마다 '돕식'이 생각나 함부로 어떤 약이든 일단 삼키고 보진 않을것같다.
“대단한 희열을 맛보기 위해 약들을 삼킨게 아니다 .그냥 진통제 다섯알 먹고 영화보고 잠들고 싶은게 다였다"
- 매튜페리 자서전 <프렌즈,연인들 그리고 끔찍한 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