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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맨 Feb 16. 2024

<추락의해부> -아무도 모르는 부부의 세계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추락의 해부>다.(글에 약스포있습니다)

(감독 :쥐스틴 트리에 / 주연: 산드라 휠러)  


눈으로 뒤덮인 한적한 프랑스 시골 마을. 교수 사무엘이 3층 별장에서 추락사한다.집엔 유명 소설 작가인 아내 산드라와 시각장애가있는 아들 다니엘, 그리고 강아지밖에 없었다. 창의 높이나 피가 튀긴 흔적을 봐서 단순 사고라고 보긴 어려운 상황. 결국 아내가 죽였느냐, 남편의 자살이냐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사망자와 목격자와 용의자가 모두 한가족인 상황.단순사고나 자살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을 죽였다면,이 가족은 파탄을 맞고 11살인 시각장애인 아들은 홀로 남겨질 것이다.결정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정황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해야하는 법정 장면이 진행되면서 관객인 나는 과연,아내가 남편을 죽였을까,그렇다면 왜? 라는 심정으로 영화를 지켜보게 되었다. 


아내 산드라가 살인자라고 심적으로 '확정'짓고 공격적으로 심문을 하는 검사는 아내가 현실의 이야기를 소재로 소설을 쓴다는 데 착안해 그녀의 소설까지 분석한다.

한마디로 검사가 쓰는 막장 '소설'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남편이 죽기 전날 아내 몰래 녹음한 '녹취록'이 법정에서 까발려지며 사건의 숨겨진 전말과 불편한 진실이 밝혀지는 듯하다.

그 녹취록 속에는 사고로 시력을 잃은 아들로 인한 남편의 죄책감과 갈등, 아내의 성공에 대한 남편의 질투와 우울, 아내의 외도, 재정적 문제, 심지어 불만족스러운 성생활,결정적으로 고성과 따귀와 자해로 점철된 육탄전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장면은 플래시 백으로 보여지는데, 두 사람의 감정이 격해지는 지점부터는 회상이 아닌 오직 목소리로,법정 안에 쩌렁쩌렁 울려퍼진다.아내의 표정은 그야말로 참담하고,아들은 알수없는 표정으로 숨죽이고 있다. 

재밌는 건 현실에서도 종종,잘나가는 아내(여자) 에 대한 질투로 남편(남자)는 급격히 망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반대의 경우는 드문데 말이다.고정적인 젠더의 역할이 뒤집어졌을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아무튼 겉에서 봤을 땐 지적인 교수와 잘나가는 소설가 부부,장애가 있지만 똘똘한 아들과 외딴 별장에서 사는 평화로운 가족이지만,배심원과 방청객들 앞에 낱낱이 까발려지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그러니까 부부의 은밀한 사생활은 오래전부터 삐걱거리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사실 얼마나 잔인한가!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한게 아니라,만인이 만인 앞에 다 까발려져야만 한다.추락을 해부하고자 했으나,사실은 관계가,부부가,가족이 처참할 정도로 '해부'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그런 의미에서 '추락의 해부'란 제목은 기가 막히게 중의적이다.) 

하지만,산드라는 반격한다. 서로 아무리 사랑해도 다툼이 일어나는 상황에선,진실이 아닌 과장된 속내로 서로를 공격하고 상처 줄 수 있는게 부부라고.자신은 남편을 사랑한다고.(이 말엔 당연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국 결정적으로 보였던 '녹취록'조차 아내가 남편을 죽였을 거라는 의심을 입증하지 못한다.

만약에 이 녹취록이 언론에서 먼저 터뜨렸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해보았다.

아마 아내 산드라는 단번에,우울한 남편을 둔기로 때린 후 3층에서 밀어 추락사시킨 '마녀'로 둔갑하는데 몇분이면 충분했을 거다. 하지만,'판결'은 간단하지가 않다.


결국, 공은 아들 다니엘에게 넘어간다.

아빠와 엄마의 관계에 관한 유일한 목격자인 다니엘의 증언은,재판의 말미에 배심원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타가 된다.다니엘은 고통 속에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선택한다.

(다니엘의 이 선택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지만,강스포가 될 수 있어 적지 않는다) 



이 영화는 법정 스릴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이다'결말같은 것 없이 다소 애매모호하게 끝이 난다.그러고보면  이 영화는 애초부터 '누가' 범인인지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증거가 없이 정황만 있는 상태에서 아내가 살인자가 되긴 관객들이 보기에도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누가'가 아니라 '왜',한 남자가 추락사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해부'하며  '아무도 몰랐던' 부부관계의 추락과 한꺼풀 벗겨진 민낯을 목격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싶다.

<결혼 이야기>의 매운 맛 버전이랄까. 

그래서,이 영화의 엔딩이 해피엔딩인지,새드엔딩인지도 모호하다. 

판결이 끝난 후 엄마가 오기 전 이미 잠들어있던 다니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어쨋든,두 모자와 강아지는 아빠와,남편없는 세상에 살아갈 것이다.'추락'으로 인한 각자의 상처를 안고서 말이다.


참,여러 모로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P.S) 이 영화엔 관객의 달팽이 관을 자극하는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꼭 한번 들어보시라) 


1) 첫 씬에서 산드라가 학생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남편이 일종의 경고의 의미로 음악을 엄청나게 크게 트는데,(정말 시끄럽다)  학생은 나중에 법정 진술에서 그 음악이 적잖은 긴장감을 줬다고 한다.


이 음악은 보이지 않는 남편 사무엘의 존재를 알리는 매우 존재감있는 음악으로, Bacao Rhythm & Steel Band 곡 < P.I.M.P>이다.

(원곡은 50Cent의 곡인데,역시 힙하다.영화 속에서 이 노래 가사가 여성 혐오적이라는 대사가 있다.남편이 양성애자인 아내가 인터뷰하러온 여학생을 유혹하는 걸 비난하기 위해 틀었다는 의미다.)

어떤 댓글에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때,이 음악이 '엄청나게 크게 ' 울려퍼져야한다고 썼던데,나도 완전 동의한다! 

(* 이 작품은 프랑스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아카데미 작품,감독,각본,편집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https://youtu.be/MQ6J4xHuMgc


2) 두번째 곡은 다니엘의 불안과 두려움,혼란스러운 심정을 대변하는 피아노곡으로,다니엘이 연습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곡, Asturias - Isaac Albeniz이다.굉장한 속도감이 있는 곡이다. 


https://youtu.be/6pDTf6QnL24


정말,부부 관계는 아무도 모른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사실,잘 알 수가 없다.

부부관계는 ' 칼로 물베기'가 아니라 저마다,언제든 작은 칼날을 품고 살기 십상인 관계다 .(너무 무섭나?ㅋ)

그래서 나도,극내향형인 남편에게 가끔 묻는다.

" 무슨 생각해?"

ㅎㅎ  


아직,극장에 걸려있을 때 꼭 보시길 추천한다.

내 맘대로 랭크 : A+ ★★★★★ (절대 지루하지 않은 황금종려상 수상작입니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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