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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럭키젤리 Jul 29. 2024

5. 너무 불편한데 선진국이래요.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독일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딱히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 세대는 당연하고, 지금도 여전히 '독일제'라고 하면 좋은 품질과 신뢰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 엊그제 파리올림픽 개막식 SBS 중계에, 독일 선수 입장시 ["Made in Germany" 인정하시죠...?] 라고 자막이 나오길래 이 글을 쓰는 와중에 혼자 놀랬다. -  통일 이후의 고도의 경제 성장, 제조업 기술 발달, 복지 제도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독일이 선진국이라는 생각은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꽤나 오랜시간 각인되어있는 것 같다. 


얼마전 시부모님이 방문하셔서 3주간 우리 집에 머물다가셨다. 유럽여행이 처음이신 시부모님은 여느 한국인들처럼 '독일은 선진국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여행 내내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이렇게 느리고, 불편한데 독일이 도대체 왜 선진국인거니? 한국만큼 살기 좋은데가 없다~"



그렇다. 사실 아마 독일 사는 많은 한국인들이 느끼겠지만, 독일에서의 삶은 여간 답답한게 아니다. 툭하면 파업하고 지연이 일상인 대중교통, 배송은 맨날 늦어지는데 그마저도 건물 어딘가에 내팽개치고 가는 택배, 아무리 불러도 계산하러 빨리 오지 않는 종업원, 관료주의에 아주 찌든 관공서들,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인 병원들, 더러운 길거리...... 그것 이외에도 느리고, 답답하고, 어찌보면 무책임한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고,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속터지는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다. 내가 더 얘기하기 입 아플 정도로 말이다. 독일이 이렇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환상을 버리고 온 나조차도 가끔은 답답하고 속터져서 짜증이 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독일에서 온라인 주문을 하면 배송이 3일 정도 걸린다고 안내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저런 택배사 사정으로 미뤄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재중일 때, 기사님이 현관문 바로 앞에 택배를 두고 인증 사진까지 찍어보내주는 한국과는 달리, 독일 택배는 대면 전달이 원칙이다. 독일에 와서 처음에는 오늘 도착한다는 알림을 받으면 집 앞 마트조차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 틀여박혀서 택배를 기다렸다. 대면으로 택배를 받지 못하면 Paketshop이라고 불리는 근처 택배 수령처에 직접 가서 본인 확인 후 물건을 수령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Paketshop에서 바로 수령할 수 있으면 아주 다행인 케이스이다. 종종 독일의 택배기사들은 우리 집이 아닌 곳에 택배를 던져놓고(!) 가는 경우도 있어, 다른 어딘가 내 물건이 나뒹굴지 않을까 걱정해야하거나, 아님 영영 분실 되어 뚜껑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진 (다행히도) 택배 분실이나 지나친 지연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 오늘 온다고 해서 하루종일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일 온다고 갑자기 알림이 뜨는 정도의(...) 경험 정도였다. 참, 그리고 3층인 우리 집까지 절대 올라오지 않는다. 벨을 누르면 내가 1층까지 내려가서 가져오는게 다반사다. 한국에서 새벽배송, 당일배송이 아니면 취급하지도 않았던 내게 오매불망 택배만 기다리고 있는 삶은 사실 이전에는 상상할 수가 없던 것이었다.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택배가 불안하니 늘 필요한 것을 오프라인에서 사기 시작했다. 늘 밤에 다음날 먹을 것을 구매하면 아침에 집 앞에 대령해주는 삶을 살다가, 여기서 무겁게 장을 보고 낑낑대며 3층까지 겨우겨우 올라올 때면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현타가 오기도 했다.

 

하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극한직업으로 여겨지는 택배기사라는 직업과 물류업종이 독일에서는 그렇게 극한직업은 아니겠다 싶었다. 여기선 과도하게 무거운 것들을 끊임없이 상하차하거나,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 배송을 하거나 하는 일이 없다. 시간에 남들 일하는 시간에 일하고, 남들 일하는 만큼 적당히 일을 하며, 적당한 월급을 받는다. 한국에서는 택배기사들이 과도한 업무와 노동으로 사망하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유로 용납이 된다. 하지만 독일에서 매일 뉴스를 챙겨보면서도, 택배기사가 혹은 그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도 "(돈을 벌기 위한) 과로로 사망했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한국은 왜 새벽배송/당일배송이 필요할까? 내 경우에는 새벽배송 플랫폼이 조금 비싼 것을 알면서도, 야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마트에 갈 시간이 없었다. 그저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손가락으로 손쉽게 고를 뿐이었다. 바쁜 한국인들은 일하느라 너무 바빠서 마트에 갈 여유조차 없는 것일까? 독일에서 새벽배송 없이 살아보니, 생각보다 지금 당장 오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은 의외로 없었다. 집까지 들고오기 무겁지만, 오히려 그걸 감안해서 과소비 하지않고 딱 필요한 것만 사 생활비를 오히려 절약할 수 있었다. 한국에선 그냥 일과가 바쁘고 지치니깐, 집안일은 쉽고 편리하게 하는게 가장 중요했다. 


한국과 독일의 차이는 비단 물류(택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독일의사들은 항생제 처방을 안해줘서 난처하다고 한다.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가도, 의사는 2주 병가를 내고, 감기차를 마시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처방한다. 사실 중대한 질병은 그러면 안되겠지만, 감기는 면역력의 문제라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잘 먹으면 자연스럽게 낫는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직장인들은 항생제를, 약을 먹고 아주 빨리 나아야'만'한다. 일터로 돌아가야하기 때문이다. 감기 때문에 2주 병가를 내는 동료직원을 충분히 이해해 줄 직장이 있을까? 어린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자녀가 감기에 걸려도 일터에 나간 부모님은 2주간 보살펴 줄수 없다. 자녀들도 빨리 나아야한다는 뜻이다. 내 경우도 그랬다. 위장염에 걸려서,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가면 원인은 지나친 업무와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처방은 휴식이 아니었다. 항생제, 수액, 비타민 주사 같은 약물로 번쩍 컨디션을 끌어올려야했다. 1시간 수액을 맞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 일을 했다. 




나는 라인강변에 산다. 한국이 눈부시게 성장한 것을 라인강의 기적에 빗대어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러왔다. 하지만 지내보니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기적인 것 같다. 매일 라인강변을 따라 조깅을 할 때면, 물류를 한가득 실은 수송선들이 강을 따라 유유히 흘러간다. 라인강을 이용하여 물류를 수송하고, 조달 받은 물자를 이용하여 라인강변의 공업지대를 발달시킨게 라인강의 기적의 원리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은 한강이 경제발전의 수단 자체이진 않았다. 한강이 흐르는 서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가정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한강의 기적은 한국 사람들의 근면함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 근면성실함 속에는 모두 각자 자기 나름의 희생이 있었다. 독일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 배려는 해도 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가족을 혹은 돈을 위해 자기를 희생해서까지라도 성과를 만들었다. 택배기사에서 직장인까지, 부모님 세대부터 젊은 세대까지 각자 나름대로 스스로를 착취한 결과, 최강의 편리함과 효율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이에 지친 많은 한국인들과 한국 사회가 마음의 병을 얻고 있다. 


자, 그럼 선진국의 기준은 무엇일까? 생활하는데 있어서 개인적으로 불편하거나 열받는 일은 있지만, 대부분 적당한 삶의 만족도와 적당한 돈을 버는 나라. 살기는 너무 편리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나를 갈아넣어야하는 나라. 살기도 정말 편리하면서, 국민 개개인 마음이 편안한 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라면, 독일도 한국도 둘다 선진국은 아니지 않나?




오늘로서 독일에 오게 된지 딱 9개월이 되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자란 내가 철저한 한국인의 시선에서 독일이란 곳을 바라보고 그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과연 내가 경험한 단편적인 것들로 "독일이란 나라는 이렇다" 라고 일반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는 아직 독일에 산지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내가 교류하고 지내는 진짜 독일인은 어학원 선생님 단 한 명 뿐이다.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든지, 독일 학부모 커뮤니티에 속한다든지 등 진짜 독일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 속해서 경험한 것은 (안타깝게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독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풀어 놓은 브이로그, 블로그, 인스타툰에 올라오는 독일생활 이야기 보따리에 공감을 누를 정도의 얕은 깊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내 이야기들을 모든 독일사회가, 독일인들이 그렇다고 일반화하고 싶지않다. 또 그렇다고 독일이 더 선진국이라고 사대주의적으로 치켜세우고 싶지도 않다. 


그냥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짠하고 안쓰럽게 느껴진다. 독일에 오기 전, 주재원 와이프로 살게 될 삶이 (지난 5편에서 이야기 했듯) 불안하고 걱정되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한국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경쟁, 책임감, 희생정신... 이런 것들에 오랜 시간 너무 얽매여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숨을 쉬고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렇게 독일에서 잠시 숨 쉴 틈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친구들이 잘 지내냐고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잘지내, 살긴 불편한데, 마음은 엄청 편안하게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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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독일 쾰른대성당과 호엔촐레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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