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럭키젤리 Jul 22. 2024

4. '레버리지'가 주는 상실감

무슨 일을 해야 잘 될까?

요즘 한참 재테크 공부에 빠져있는 남편에게 지인분께서 무어의 "레버리지"라는 책을 추천해주면서, 본인이 직접 작성한 독후감도 공유해주셨다. 책 전체를 읽는 대신 정성껏 정리된 내용을 읽어보았다. 그 중에 80/20법칙이 가장 인상 깊었다. 가치창출의 80%는 하는 일의 20%에서 나온다는 의미인데, 이를 반대로 말하면 하는일의 80%는 20%의 성과 밖에 내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책은 내가 하기 싫은 일, 내 기준에 가치가 없는 일에 노력을 쏟지 말고,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내용을 강조했다. 쓸데 없는 일을 열심히 하지말고, 그걸 일정 비용을 지불하여 위임(외주)를 하든가, 과감히 버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가치를 창출하는 20%의 일의 비중을 더 늘릴 때, 효용이 극대화되고, 레버리지 효과가 일어난다고 한다.


이 법칙을 소소하게라도 현재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았다. 지난 3화에서 이야기했듯이, 난 집안일이 싫고, 내 인생에서 크게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내 일상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청소기 + 물청소 + 청소기청소 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신형 청소기를 알게 되었다. 매일 정전기 청소포로 한번, 청소기로 한번, 물걸레로 한번 총 3번 바닥청소를 하고, 청소기까지 청소하던 차였다. 그 신형 청소기 한번이면 4번에 해당하는 청소과정을 한번으로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청소기를 구매하는 것이 80/20법칙을 실천하는 첫걸음이겠다 싶어 부지런히 구매 후기를 찾아보았다. 후기를 보고 나니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 같았고, 그래서 더 갖고 싶어졌다. 


청소기는 700유로, 원화로 100만원 상당의 고가의 청소기였다. 80/20법칙에 따르면, 내가 700유로 상당의 청소기를 구매해서 집안일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인 만큼, 그 시간에는 적어도 700유로 이상의 가치를 창출해야만 이 청소기 구매로부터 레버리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청소하는 시간을 아껴서 700유로는 커녕, 70유로의 수익조차 거둘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오히려 내가 가사일에 정성을 쏟는 것이 700유로를 버는(아끼는) 길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레버리지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니 더 나아가 내가 그 어떤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상실감을 느꼈다. 일상의 80%에서 20%의 가치조차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휴직하고 독일에 오기전 커리어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남편의 직업 특성상 3년간의 휴직기간이 끝난 후에도, 해외에서 살아야할 가능성이 높았다. 언젠가는 지금의 직장을 그만 두어야할 날이 올 것이기에 미리 준비하고 싶었다. 커리어 멘토는 지금의 직장이 내 인생의 전부라는 태도를 버리고, 나만의 일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나만의 일은 전세계 어디를 가도 노트북 하나만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어야한다고 했다. 전문직도 아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멘토는 여러가지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서 그동안의 내 경험과 능력치를 공유하는 일부터 시작해보라고 하였다. 


그 이후로 학생 때부터 소소하게 기록해오던 블로그에 유럽 여행 후기를 꾸준히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적지 않아서 그런지, 주제가 중구난방이라 그런지, 오랜시간 방치된 적 있어서 그런지 저품질 블로그에 걸렸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발견하였다.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 효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상태였던 것이다. 독일와서 가장 꾸준히  하던 일 중에 하나가 블로그였는데,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휴직을 하면서도 동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유튜브 해보라'는 말이었다. 유럽에서의 일상은 좋은 콘텐츠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영상을 만들어 편집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매순간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 어려울 뿐더러, 내 일상이 생각보다 다이나믹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결국 내 경험들은 사람들이 흥미있어하는 정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공유할수 있는 능력치는 무엇일까? 직장 생활을 12년을 했음에도 나에게 무언가 전문적인 능력치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다. 커리어 멘토는 회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했는데, 회사를 빼고나니 나에게 남아있는 건 없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대학 선배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다. 선배는 안의 나를 억누르지 말라는 말을 하였다. 이것저것 핑계대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직 나는 모르겠다. 20%의 노력으로 80%의 성과를 창출하는 나의 능력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런데 그게 뭔지 모른다는 이유로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고 내 스스로를 틀안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감 같은, 어쩌면 패배의식을 일부러 느끼고 있을 필요는 없다. 내 능력치를 모를 때는, 일단 꾸준함으로 승부해보아야하지 않을까. 꾸준히 경험하고, 꾸준히 글을 쓰고, 꾸준히 공부하고..... 그게 하나씩 쌓다보면 언젠간 80/20법칙으로 레버리지 효과를 안겨줄 씨앗이 되지 않을까 간절히 바래본다. 




[썸네일 사진 : 독일 아헨 대성당의 천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