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럭키젤리 Jul 08. 2024

2. 주재원 허즈밴드는 왜 없어요?

나의 직장은 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자부하는 곳으로, 신입사원 연수 때만 하더라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기들이 해외 주재원 발령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그 꿈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데까지 1년도 채 안걸렸던 것 같다. 특히나 여자로서는 말이다. 10여년전만 해도 우리 회사에서 여자 해외 주재원은 1명 뿐이었고, 아주 이례적인 경우였다고 한다. 해외 주재원은 온가족이 함께 가야 안정적인 환경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데, 여성의 경우에는 남편이 일을 그만두거나 쉴 수 없어서(?) 온가족이 다 함께 갈 수 없고, 또한 여성은 자녀를 돌봐야하기 때문에 업무에 집중이 안된다는 현실적인 이유였다. 또 치안이 안좋아서(?) 여자는 위험하다고도 했다. 현실은 무슨. 아주 구시대적인 이유에 나는 반동분자 기질이 피어났다. 동기들 다들 하나 둘 해외주재원에 대한 마음을 접을 때, 난 꼭 주재원 발령을 받겠다고 다짐해보았다. 


그래서 입사 후 느리지만 차근차근 해외 발령을 위한 준비를 나름대로 해왔다. 해외영업과 전혀 관계 없는 직무였지만 늘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틈틈이 영어 공부도, 독일어 공부도 했다. 운이 좋게 승진도 비교적 빨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해외 주재원 선발 풀(pool)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 풀 안에서 인사부의 간택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마침 남편도 같은 시기에 독일로 발령 받게 되었다. 둘이 함께 독일에서 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진인사는 충분했다, 대천명만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국 기대와는 다르게 나의 독일 주재원행은 좌절되었다. 내가 떨어진 이유는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물론 직무에 적합하지 않고,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발되신 분들 모두 업무역량으로나 인품으로나 촉망받는 직원이라고 전해 들어서 결과에 순응했다. 하지만 왜 내 마음 속에서는 "혹시 내가 여자라서 안된 게 아닐까?" 라는 피해의식 아닌 피해의식이 계속 피어오르는 것일까?


해외여행이나 유학이 어려웠던 부모님 세대에는 주재원 발령으로 인한 귀중한 해외 경험은 아주 큰 장점이었다. 해외를 다녀오면 능력을 인정 받아, 직장에서의 탄탄대로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 시절 해외 주재원은 또다른 기회이자, 특혜였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회사를 막론하고 예전만큼 해외 주재원이 인기가 없고, 오히려 다들 나가기 싫어하는 분위기라고도 한다. 회사는 특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워라밸이 중요해진 시대에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보다, 한국에서 워라밸을 챙기면서 내 돈으로 해외여행 다니는게 더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부모님 세대는 대체로 외벌이였고, 여성이 가사를 담당하였다. 그래서 가장이 발령나면, 가족이 전부 다 따라가는 결정이 쉬웠다. 하지만 이제는 다들 맞벌이다. 요즘은 본인의 경력을 단절시키고 주재원 가족으로 따라 나가는 것을 아주 부담스러워한다. 내 주위에서도 배우자의 반대에 부딪혀 주재원 발령을 신청하지 않는 동료들도 보았다. 그래서 경쟁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왜 매번 주재원 선발 명단에 여성의 이름은 올라오지 않는 것일까? 


물론 우리 회사도 10년전에 비하면 여성 주재원의 비중이 아주 아주 조금 늘어났다. 하지만 치안이 안좋은 나라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위험하고, 육아와 양육은 아빠/엄마 공동의 몫이다. 제도적으로 배우자 해외발령 휴직이 여성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남성도 쓸 수 있는 휴직제도이다. (우리 회사 기준. 아마 해당 제도를 보유하고 있는 다른 회사도 성별에 한정을 두지 않았을 거라 예상한다.) 내가 사는 독일만 해도 많은 한국 여성들이 현지 직장에 취직하여 본인의 커리어를 쌓고 있다. 여성이 해외에서 직장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그런데 왜 주재원 와이프는 많은데, 주재원 허즈밴드는 없을까? 주재원 허즈밴드는 많은데 사교적인 모임을 갖는 것은 와이프들만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육아휴직이 있어도 쓸수 없는 아빠들의 비애와 같은 맥락인 것일까?


이유야 어쨋든 그럼에도 우리 남편은 주재원 허즈밴드를 꿈꾼다. 그도 나처럼 고된 직장생활에서 잠깐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도 그 희망사항을 응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주재원이 되어야한다. 복직 후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에게 주재원 발령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휴직 기간동안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아님 정말... 혹시 뚫을 수 없는 유리천장 같은 것인가 두려워할 때 단비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평소 직장에서 일 잘하기로 인정받는 한 여성 직원분께서 뉴욕지사로 발령 받게 된 것이었다. 나의 직장도 10~20년전과는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더 발전하고 변해야하는 것일까?




[썸네일 사진 : 벨기에 리에주 세인트 폴 대성당, 김인중 신부님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이전 02화 1. 사주팔자가 점지한 독일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