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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럭키젤리 Aug 12. 2024

7. 어학원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계

독일에서 독일어를 배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한국 학원의 시스템에 길들여진 나에게는 어학원에 등록하는 것이 가장 쉽고 익숙한 방법이라, 입독하자마자 어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독일에서의 어학원은 크게 3종류로 나뉜다. 한국에서는 독일문화원으로 알려져있는 괴테 인스티튜트, 사설 어학원, 그리고 VHS 이다. VHS 는 Volkshochschule (폴크스 호흐 슐레)의 약자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성인용 평생교육기관이다. 한국에는 이와 딱 맞아 떨어지는 교육기관의 형태는 없는데, 가끔은 문화센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독일어를 비롯한 각종 어학 뿐만 아니라 인문, 예술, IT 분야까지 한 학기 강의 목록이 문제집 한 권 두께가 될 만큼 다양한 강의를 제공한다. 독일문화원과 사설 어학원은 수업료가 꽤나 비싼 반면에, VHS는 지자체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합리적인 편이다. 


아무래도 현재 딱히 수입활동이 없는 나로서는 강의료가 저렴한 VHS에 등록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후기를 찾아보니,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는 VHS를 그리 추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냐, 어떤 학생들을 만나냐에 따라서 수업 퀄리티가 제각각이라는 것이었다. 독일에서는 이민자/난민이 독일 사회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독일어 어학 강좌를 지원해주는데, 주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VHS의 강좌들이 그 제공 대상이었다. 취업을 하려면 적어도 B1 수준까지의 수강 이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진짜로 독일어를 '공부' 하려는 목적보다는 하루 빨리 수업 시수를 채워 일터에 나가기 급급한 학생들로 면학 분위기가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최근 급증하는 난민 수로 인해 반 당 학생수가 많아져, 수업 분위기가 산만하기도 하고, 말할 기회가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그래서 확실한 독일어 성적이 필요한 경우에는, 돈을 더 주고 사설 어학원에 가는 것이 면학 분위기나 수업 강도면에 있어서는 더 괜찮다는 후기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VHS를 등록하였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면 내 경우엔 좋은 쪽에 걸릴 확률도 있지 않은가. 사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지금 당장 급한' 이유가 없었다. 언제까지 몇 단계를 충족하는 시험 성적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지금까지의 독일어 실력을 조금 업그레이드하고,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중요할 뿐이어서, 일단 VHS의 수업을 듣고 단점이 크면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여유롭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업은 아주 만족스럽다. 


우리 반에는 정말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이 있다. 왠지 동아시아인 혹은 중국인이라도 한 명 정도 있을 법한데, 내가 유일한 동아시아 출신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솔직히 놀랍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시험 성적이 좀 더 중요한 동아시아 유학생들은 사설 어학원에 다니거나, 이미 어학을 마스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 이란, 파키스탄, 케냐, 가나, 에티오피아, 멕시코, 에콰도르, 콜롬비아, 우크라이나, 보스니아... 


솔직히 내가 해외여행을 적게 다닌 편도 아닌데, 모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었다. 다행히 VHS를 등록하기 전에 걱정했던 면학 분위기는 기우에 불과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무엇보다도 독일어를 잘 배워서 유창하게 말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친다. 우리는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수업 이후 채팅방에서 서로 복습을 도와주기도 하고, 각자 발견한 즐거운 독일어 컨텐츠를 공유하기도 한다. 매주 9시간씩 수업을 듣는데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심지어는 친구들끼리 수업 전에 미리 만나 자발적인 회화스터디를 하기도 한다. 물론 인터넷 상의 후기처럼 우리 반에도 취업 최저 마지노선이나 수업료 환급을 위해 시간만 채우려고 오는 학생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배우려는 의지가 강한 학생들이 다수이다 보니, 공부에 관심 없는 친구들은 학구열이 불타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다양한 의견에 늘 열려있고, 즐겁고 편하게 수업을 이끌었지만, 단호할 때는 '아주 독일인'스러웠다. 언제는 출석률이 저조한 학생이 수업료 환급만을 위해 수강증명서를 요구하자, 불량한 수업 태도와 독일어 수준으로는 증명서에 싸인해 줄 수 없다고 말하는 아주 엄격함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런 학구적인 분위기(?) 속에서 내 독일어 실력도 점차 향상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독일어 만큼 세상을 보는 눈 또한 조금 더 넓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피부색도, 모국어도, 살아온 배경도 너무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들이 늘 새로웠다. 보통 한국에서는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정치/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예민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고국의 문화와 독일과의 다른 점을 설명하려면 어려운 문제와 그에 대한 본인의 가치관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대화가 시작되면 교재의 진도를 나갈 수 없을 만큼 활발한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지평이 넓혀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동안 얼마나 내가 좁은 세상에서 오만하게 혹은 편협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친구 M. 그는 20대 후반의 아주 건실한 청년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건축을 공부했지만, 지금 독일에서는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다. 주말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평일 저녁에는 사촌 형이 운영하는 에티오피아 레스토랑에서 일을 돕는다. 그는 늘 피곤할 법 한데도, 주 3회 진행되는 독일어 수업에도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며, 선생님을 도와 이것 저것 수업의 뒷정리 담당을 자처한다. 그리고 그는 의외로 수업 수강생들 중 가장 동아시아 문화에 익숙한 친구이기도 하다. 어느 날 자기의 첫사랑(?)은 2012년 KBS드라마 '사랑비'에 출연했던 윤아라고 고백하였다. 한국에서 저조한 시청률로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는 드라마를 에티오피아 청년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워 물으니, 에티오피아에서는 KBS World 채널을 쉽게 시청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에 잠깐 거주한 적이 있기도 할 정도로 동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아,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에티오피아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최빈국'과 '커피' 를 제외한 다른 키워드를 전혀 떠올리지를 못했다. 어렸을 적에 (지금과는 다르게) 별로 잘 먹지 않아 식사를 자주 남기곤 했었는데, 그럴 때면 아빠는 "에티오피아에 굶어 죽는 기아가 얼마나 많은데, 음식을 남기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밥을 다 먹어야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 기억의 잔상이 내 머릿 속에 박혀, 에티오피아 하면 최빈국과 기아가 늘 항상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M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틈히 헬스장을 가서 운동을 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건강해 보인다. 국제 정세에 관심이 많아 늘 날카로운 비판을 하기도 하고, 유머감각도 뛰어나서 언어유희적인 풍자를 하기도 하는데 그의 촌철살인에 한두번 놀랐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었다. 왜 나는 가난한 나라 출신이면 건강하지도 않고, 지식수준도 낮을 것이라고 생각해왔을까? TV로 KBS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놀라웠을까? 사실은 가난한 나라는 TV도 없을거라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기엔 한번도 아프리카의 사회, 문화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해본 적 조차 없었다. 가난한 나라니깐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서양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미묘한 인종차별에 늘 분개하면서도, 나조차도 그런 차별적이고 편견에 가득찬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 부끄러웠다. 그의 삶은 내가 치열하게 살았었던 20대의 삶과 크게 다를게 없어 보였는데도 말이다. 


이란에서 친구 Z. 그녀는 40대 초반의 아주 상냥하고 사려깊은 여성이다. 그녀는 독일에서 종교학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그녀의 지도교수님은 가톨릭 신부님이다. 아주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에서, 자유가 제한 되어있다는 여성의 몸으로, 그리스도교(가톨릭/개신교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사용하였다)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놀라웠다. 종교학을 공부해보니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 공통점이 많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독일로 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공부도 공부지만, 아직 유치원생인 막내 딸에게 "자유"와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알려주고 싶어서 독일행을 결심했고, 궁극적으로는 이 곳에 정착하길 원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에 대해 생각해볼 때면, 권위적인 남편과 그로 인해 힘들게 사는 아내가 늘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Z의 남편이 그녀의 학업과 독일 생활에 반대했던 건 아닌지, 혹시나 부부관계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사실 Z는 히잡을 쓰지 않을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은 나의 오지랖이었다. Z의 남편은 이란과 독일을 오가며 그녀의 학업과 독일 생활을 적극 지지해주고 있다. 


물론 현재 이란 사회가 상당히 권위주의적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이슬람 남성은 무조건 권위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앞장서는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아직 용기를 내는 여성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꼭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 여성운동을 하는 것만이 방도가 아니었다. 자유와 다양성을 찾아 독일에 와서 공부하는 방법을 택한 사람도 있었고, 그러한 진취적인 여성을 지지해주는 이슬람 남성 또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디어에서 종종 봐왔던  -이슬람 규율을 지키지 않은 아내를 죽인 남편과 같은- 그런 몇몇의 자극적인 이야기는 전부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O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독일로 넘어온지 2년 정도 되었다. 언어치료사인 그녀는 정말 다행히도 독일에서 같은 직업으로 일을 하고 있다. 과거 구 소련에서 독일로 넘어 온 할머니/할아버지 세대들은 독일 사회에 정착하여 독일어를 사용하면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나이가 들어, 특히 치매에 걸리게 되면 평생을 사용한 독일어를 다 잊어버리고, 태어나서 습득했던 모국어만 구사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O는 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 화자로서 독일에서 그들을 대상으로 언어치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는 그녀지만, 공식적으로 독일에 체류하고 있는 자격은 '난민' 신분이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독일어 공부에 열심히다. VHS를 등록하기 전, 수업에 난민이 많으면 면학 분위기가 저해가 된다는 후기가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난민과 부랑자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해왔던 것은 아닐까? 왜 난민이면 공부나 삶에 대한 의욕도 없이 지원금만을 축내며, 우범지대에 거주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부정적인 존재라고만 인식했던 것일까? 




나는 그동안 내가 해외 경험이 그리 적지 않다고, 꽤나 글로벌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동안 내가 도취되어있었던 '글로벌한 마인드'는 너무 영미권 혹은 백인 중심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학창시절 배운 세계사는 "세계"를 다룬다면서 유럽과 미국 위주  열강들의 서양사 시간이었다.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에 대해서는 배운 기억도 없거니와, 솔직히 배우려고 스스로 노력한 적도 없었다. 그러면서 영미권 문화를 조금 경험해봤고, 조금 익숙하다는 이유로 나는 글로벌한 사람이고,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아주 크게 착각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관심 없는 그 외의 세상은 단편적인 조각들로 채워진 편협한 생각들로 채우고 있었다. 


독일 주재기간이 끝나면 남편의 다음 발령지는 아프리카/남아메리카/중동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 있을 때 늘 이런 상황을 주변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잘 사는 나라 한 번 가면, 못 사는 나라 한 번 가야하는데, 못 사는 나라 가기 싫어"라고. 그리고 이런 발언이 실로 차별주의자들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어차피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것은, 그 곳이 어디든 어렵고 불편한 일이기 마련이다. 선입견만으로,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도 않고 쉽게 판단해 버리고, 미리 재단해 버릴 필요가 굳이 있을까. 그래서 나에게 매주 VHS의 수업은 정말 즐겁고 소중하다. 새로운 세상을, 지평을 조금씩 열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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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독일의 대표 관광지, 노이슈반슈타인성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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