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곳에 간 것은 순전히 <제부도>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제부도입니다. 그리고 소설 〈제부도〉가 있습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제부도〉를 감명 깊게 읽은 저는 제부도에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당시에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결국 하루 휴가를 급히 내고 제부도로 떠났습니다.
당시의 제부도는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열리고 닫히는 길로만 들어갈 수 있었기에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을 잘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우선 시외버스를 타고 서신 버스 터미널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습니다.
처음 가는 길인 데다 제부도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과 마을버스 시간 등이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적잖이 긴장되었습니다. 마을버스는 30분 정도 기다려야 했습니다.
처음 온 낯선 동네 길을 초조함과 설렘이 복잡하게 교차되는 마음으로 서성대며 마을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저 멀리로 마을버스가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마을버스를 타고 나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평일 오전이어서인지 승객은 저뿐이었습니다. 왼쪽 좌석과 오른쪽 좌석 중 어느 쪽이 더 풍경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왼쪽 좌석에 앉았습니다.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는 붙임성이 좋은 분이셨습니다. 제부도까지 가면서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 작은 바닷가까지 혼자 여행 왔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멋쩍은 웃음으로 얼버무렸습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 바닥이 훤히 드러난 갯벌 사이로 뚫린 도로를 달리는 느낌은 왠지 묘하고 좋았습니다.
아저씨와 이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막차 버스 시간은 꼭꼭 확인해 두었지요. 저는 막차 시간까지 꽉꽉 채워 이 제부도 바닷가에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보낼 작정이었습니다.
제부도는 소설의 느낌 그대로였습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곳이었습니다. 소설의 향기를 마음껏 느끼며 제부도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혼자 분위기를 잡으며 걷고 있었을 테니 청승맞은 모습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적당히 즐겁고 알맞게 쓸쓸했습니다.
어느덧 막차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웬 경찰차가 제 옆으로 다가오더니 계속 따라왔습니다. 바닷가에서 난데없이 경찰차라니,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창문이 쓱 열리더니 경찰 아저씨의 얼굴이 쑥 나왔습니다.
“마을버스 타러 가시는 중이시죠?”
“아, 네….”
“운전기사 아저씨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셨어요. 아저씨가 오늘 여기 혼자 온 관광객이 있다고 태워다 달라고 부탁하고 가셨어요.”
그러더니 운전기사 아저씨가 아마 재킷을 입고 혼자 바닷가를 걷고 있는 사람이 있을 테니 찾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하셨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제야 저는 오늘 제가 입고 온 옷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른 봄 주말이 아닌 평일날 오전, 각이 잡힌 딱딱한 재킷을 입고 바닷가에 혼자 온 것입니다. 갑자기 낸 하루 휴가에 제대로 여행 준비도 하지 않고 허둥지둥 떠나온 모양새였습니다. 좀 편한 여행 옷차림으로 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안 오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릴 뻔한 저를 구해 준 경찰 아저씨, 끝까지 승객 한 사람을 챙겨 준 운전기사 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제부도에 여러 번 여행을 갔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교통도 편리해지고 시설도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첫 여행만큼의 감흥을 느끼지는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