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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남을 돕는가

by 수언재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마다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유난히 아까운 비용이 있습니다. 제가 유난히 아까워하는 비용은 배송료입니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해서 얼른 주문하려고 하는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야속한 배송료 말입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눈 딱 감고 주문하면 되지만, 배송료는 왠지 내지 않아도 될 돈을 내는 듯한 찜찜한 기분이 들어 망설이게 됩니다. 제가 직접 가서 물건을 받아 오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배송료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 물건을 좀 더 추가합니다. 그러다가 물론 필요 없는 물건이 꼽사리 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배송료를 내지 않겠다는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분이 저에게 책을 보내 줄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착불로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분 입장에서는 당연합니다. 배송료를 아끼고 싶었던 저는 고민 끝에 직접 가서 책을 받아 오기로 했습니다. 시간도 많으니 바람도 쐴 겸 나들이하는 셈 치고 다녀오자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교통비가 듭니다. 하지만 착불 배송료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었지요. 책을 기다리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는 좋은 점도 떠올렸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무거울 텐데요….”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 인사를 건넨 뒤 걱정스러운 눈길을 뒤로하고 저는 호기롭게 책이 담긴 쇼핑백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양손에 하나씩 쇼핑백 두 개를 드는 순간,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습니다. 쇼핑백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몇 푼 아끼자고 내가 왜 여기까지…. 이걸 들고 어떻게 지하철을 타고 집에까지 가지?’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몇 걸음 가다가 쉬고 또 몇 걸음 가다가 헉헉대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눈길을 주지 않고 지나갔지만 안됐다는 듯한 눈길이 간혹 느껴졌습니다. 저는 땀을 뻘뻘 흘리며 길을 가면서 창피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간신히 지하철역에 도착했습니다. 쇼핑백은 겨우 지하철 안에 실렸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쇼핑백은 흔들흔들 잘도 실려 갑니다.

이번에는 환승을 해야 합니다. 저는 심호흡을 크게 했습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저는 쇼핑백을 들고 지하철에서 휘청휘청 내렸습니다. 쇼핑백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몇 걸음 못 가 다시 쇼핑백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내가 저기까지 옮겨다 줄게요.”

할아버지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쇼핑백 하나를 번쩍 들었습니다.

“휴, 정말 무겁네.”

저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양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두 번째 고비는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 길에 찾아왔습니다.

힘에 부쳐 낑낑대고 있는 제 모습을 본 구멍가게 아저씨가 다가왔습니다. 아저씨는 낡은 카트에 자잘한 물건 상자를 옮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니, 이걸 어디까지 들고 가게요?”

“이제 집에 거의 다 와 가서요….”

“그래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

아저씨는 물건 상자를 가게 안으로 옮겨 놓은 다음 다시 카트를 밀고 나왔습니다.

“이거 빌려 줄게요. 소리도 요란하고 삐거덕거리지만 중심 잘 잡고 밀면 아직 쓸 만해요.”

“아는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빌려 가도 될까요?”

머뭇거리는 저의 말에 아저씨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무거운 책들을 직접 집까지 가져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도저히 해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겠지요. 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한다면…. 얼마 안 되는 몇 푼 때문에….

물론 책들을 직접 옮겨 오기까지, 그 시간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힘과 노력을 필요로 한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수확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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