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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려되었습니다 Dec 26. 2023

비운의 천재 햄스터

초등학생이 감당할 수 없었던 생명

 아주 어릴 때, 친구네 집에서 햄스터를 키우고 있었다. 당시 강아지나 고양이는 부유한 집에서 키우는 동물로 인식하는 시절이었다 보니, 자연스레 처음 목격한 반려동물이라는 작은 생명체가 퍽 충격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이 딱히 동물을 좋아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햄스터라도 데려온게 아닐까 추측된다. 친구의 부모님도 햄스터의 습성에 대한 지식이 없어 보였고, 밥주고 똥 치우다 보면 알아서 크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지금은 충격적이지만, 당시엔 그게 당연한 느낌이었다).


 불행하게도 친구네 집에서 키우던 햄스터는 꽤나 영리한 아이였다. 공격성 대신 친화력이 강했던 작은 아이는 바닥에 손을 펴두면 쪼르르 올라올 만큼 똑똑했고, 악의는 없으나 거칠었던 손길에도 물거나 할퀴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듬뿍 사랑 받으며 호위호식 했을 만큼 영민했던 햄스터였으나 당시에는 워낙 동물보호에 대한 개념이 희미한 시기였던 탓에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


 영민한 햄스터와 호기심 많은 어린이, 그리고 무관심한 부모의 조합은 절대로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없다. 햄스터는 기본적으로 하루에 절반 이상을 자는 야행성 동물인 반면, 어린이는 절대로 자고 있는 동물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존재라서 어린 친구는 자고 있는 햄스터를 참 숱하게도 깨웠다.


햄스터는 하루 종일 자고, 어린이는 자는 동물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햄스터에게 주어진 시간은 보통 2년 안팎이지만, 영민했던 햄스터는 결국 1년도 안되어 해바라기씨 별로 돌아갔다. 당시 햄스터가 밥도 안먹고 잠도 더 많이 잔다며 친구가 서운한 모습을 비쳤는데, 그게 햄스터의 죽기 전 증상이라는 것을 안 것은 꽤나 먼 훗날의 이야기다.


 원래 나도 당시 부모님께 햄스터를 키우자고 생떼를 쓰고 있었는데, 친구네 햄스터가 해바라기씨 별로 돌아간 이후로는 보채는 것을 그만두었던 것 같다. 내가 직접 키우지는 않았지만, 자주 보고 귀여워하던 햄스터가 죽은 모습과 이를 땅에 묻어주는 과정이 어린 나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던 것 같다.


 흔히 '천재는 일찍 죽는다'고 했던가. 어릴적 친구네 햄스터는 천재였다. 그 작고 여린 존재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알고 있었고, 적개심보다 화평 정책을 펼쳤던 천재는 허무하게 스러지고 말았다. 분명 요즘이라면 더 좋은 집에서 더 사랑 받으며 자랐을테지. 떠나간 지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손바닥 위의 따뜻하고 포근했던 솜뭉치가 떠오르곤 한다. 그렇게 좋아했던 해바라기씨 잔뜩 까먹으며 편히 쉬고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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