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과 분노를 유발하는 '핑거 프린세스' 중증 환자이다.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까지 게으르게 만드는 이 무시무시한 병은 주변에서 '이거 해야 한다', '저거 해야 한다'고 세세하게 찝어주기 전까지는 절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지난번 코로나 백신도 남들 맞을거 다 맞고서야 부랴부랴 막차에 올라탄 지각생인데,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면 오죽 심할까.
때문에 처음 강아지를 키운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강아지 키우는게 쉬워보이냐", "강아지 키우려면 엄청 부지런해야 한다"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방불케 하는 혹평 세례였다. 나도 안다. 그 작은 세계를 하나 키워내는 데 얼마나 많은 리소스 관리가 필요한지. 그러나 마음은 이미 15년차 집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나에게 그런 말이 들릴 리는 만무했으니, 진짜 부지런하게 갓생 살거라는 다짐과 함께 아이를 데려왔었다.
물론 나도 책임 없는 쾌락으로 결정한 일은 아니고, 정말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입양을 결정했기 때문에 처음의 목표 그대로 아이들을 케어하고 있다. 하나 다행인 점이라면, 나의 일은 '괜찮겠지 뭐'라고 덤덤했던 내가 이 작고 여린 것들을 위한 정보는 사력을 다해 찾아본다는 것. 이 아이들은 아픈걸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정말 두려웠기 때문에, 핑거 프린세스 중증은 우리 아이들에게 만큼은 예외로 작용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신경 썼던건 역시 예방접종. 강아지 필수 예방접종은 총 6회에 걸쳐 약 12주 동안 접종하고, 필수 접종 외 2개의 상시 접종이 있다. 강아지 예방접종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나 어릴 때도 이렇게 많이 맞았나?'인데, 기억에 남아 있는건 불주사라고 불리는 결핵 예방 접종 하나밖에 없는 탓에 사람보다 강아지가 더 많은 예방접종을 맞는 것 처럼 느껴졌다.
강아지 필수 예방 접종(2주 간격, 6회)
1차 접종 (생후 6주) : DHPPL 1차 + 코로나 장염 1차
2차 접종 (생후 8주) : DHPPL 2차 + 코로나 장염 2차
3차 접종 (생후 10주) : DHPPL 3차 + 켄넬 코프 1차
4차 접종 (생후 12주) : DHPPL 4차 + 켄넬 코프 2차
5차 접종 (생후 14주) : DHPPL 5차 + 인플루엔자 1차
6차 접종(생후 16주) : 인플루엔자 2차 + 광견병 예방 접종
강아지 상시 예방 접종(월 1회)
강아지 심장사상충 백신 : 치사율이 높아, 필수적으로 접종해야 한다
내·외부 기생충 백신 : 진드기, 벼룩 등 기생충 감염 위험이 높아 꾸준히 접종 필요
강아지 예방접종은 참.. 애증이다. 무슨 접종을 이렇게 많이 맞는지 못믿어서 정보도 많이 찾아보고 필요하다고 하니 맞추긴 하는데, 돈은 돈대로 들고 직접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도 없다('예방'이니까). 나한테 아프다고 한 마디만 할줄 알았다면,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돌보지는 않았을텐데. 너무 연약하고 너무 사랑스러운 이 뽀시레기들을 위해 오늘도 혹시 어디 아프진 않을까 전전긍긍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