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리면 과실치사 비율은?
날씨가 한동안 포근하다가 갑자기 꽤나 쌀쌀해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을 거스르겠다는 항명은 불가능했기에, 바다와 콩자를 데리고 가볍게 산책을 나왔다.
'날씨도 추우니 오늘은 멀리까지 나가지 말고 가까운 주변만 돌다가 들어와야지', '오는 길에 슈크림 붕어빵 3개 사서 따끈따끈할 때 호호 불어 먹어야지'라며 가벼운 생각으로 집을 나서고 반 정도 돌았을까.
이제 슬슬 돌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맞은편 코너에서 산책 나온 보스턴테리어와 눈이 마주쳤는데 뭔가 쎄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원래 강아지들이 짖으면 의외로 짖기만 하고 별일 없는 경우가 많은데, 보스턴테리어는 우리를 보자마자 '그르르르르'하며 누가 봐도 언짢은 티를 가득 내기 시작했다. 내가 대체 뭘 했다고?
우리 콩자의 위험 감지 레이더 또한 오버쿨럭으로 가동되며 세상이 떠나가라 짖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상대의 언짢음을 자극했나 보다. '그르르르'가 '크헝헝컹헝'으로 바뀌며 한 발자국씩 다가오기 시작하는 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견주는 젊은 여자였는데 보스턴테리어가 워낙 격렬하게 반응하다 보니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함께 끌려 오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큰 사고가 나겠다 싶어서 우선 산책 중인 아이들을 한 팔에 하나씩 끼우며 들어 올렸는데도, 상대의 발걸음은 멈출 생각을 안 했다. 우리 강아지들이 너무 높은 곳에 있으니 나를 우선 공략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나를 물려고 하려는 게 아닌가! 진짜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발로 뻥 걷어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대 견주를 뒤로 하고, 상대 강아지보다 조금 빠르게 뒷걸음질 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우리 아이들도 겁을 많이 먹었는지 귀가할 때까지 계속 긴장한 모습으로 산책을 마쳤는데.. 정말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내가 다치는 건 어느 정도 괜찮아도, 만약 그 날카로운 이빨이 우리 아이들에게 향했다면.. 개가 아니라 사람과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개물림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을 때 이렇게 행동해야지 하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막상 일이 눈앞에 닥치니 머리도 하얘지고 '이러다 진짜 물리는 거 아닌가?', '지금이라도 맞서 싸워?'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개가 진정하면 상대 견주와 머쓱하게 인사도 나누려고 했는데... 실상은 자리를 피하느라 급급한 모습이랄까. 세상사 정말 맘대로 되는 게 없다.
이번 사건에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은, 아직 반려동물을 위한 법률은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 반려동물과 관련된 법이 있긴 하지만, 실상은 반려동물보다 견주와 피해자를 위한 법에 가깝다. 개물림 사고가 일어날 경우 대부분의 포커스는 '가해자(견주)가 주의 의무를 얼마나 위반하였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데, 이를 입증하는 게 쉽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하지 않는 이상 과실치사를 적용하기가 어려워 처벌의 강도도 낮다.
반려견 관련 분쟁의 소지는 당연히 해당 견주가 관리하는 게 맞지만, 아무리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다치면 결국 본인 손해이므로 조심, 또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