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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려되었습니다 Dec 12. 2023

'츄르별' 동행 일지

친구의 고양이가 먼 여행을 떠났다.

 2023년 12월 03일 오전 11시, '이번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네'라고 생각하며 따사로운 볕 아래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한가한 주말 오전과 고즈넉한 공간에서 오는 여유까지. 나를 위해 모든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대관절 왜 그렇게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던지.


 곧이어 15년지기 친구의 고양이가 츄르별로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삭풍같았던 친구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준 아이였기에, 마지막 소풍마저 이렇게 아름다운 날 떠나는구나. 얼마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에 괜시리 이렇게 좋은 날이면 불안에 떨었나보다.


 친구는 유난히 츄르를 좋아하던 아이와 함께 오랜 시중으로 길들여진 프로페셔널 집사였다. 예전에 귀가하다가 길고양이에게 간택받았다고 어찌나 좋아하는지, 멍멍단(강아지 팬클럽)의 일원으로서 없던 고양이에 대한 사랑마저 전염될 지경이었다. 당시에 길고양이를 주워오다니 미친거 아니냐며 얼마나 다그쳤는데, 걱정과 달리 너무나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에 냥냥단(고양이 팬클럽) 가입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물론 속도 많이 썩였던 것 같다).


하악거려도 어여쁘고, 숨어도 좋으니 꼭 다시 만나자 별아


 예전에 누가 "길고양이는 튼튼하다더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강아지도 소위 말하는 '시고르자브종'이 가장 건강하게 자라는 것 처럼, 스트릿 출신 고양이가 제일 건강하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비록 거친 스트릿 출신답지 않게 겁이 좀 많기는 했지만 아플 때마다 금방 다시 회복하는 게 얼마나 기특하던지, 나중엔 아파도 '금방 낫겠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훌훌 털고 일어날 줄 알았는데, 성질은 또 얼마나 급한지 그리 서둘러 떠났나보다.




 그래도 현직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로서 아이의 사체를 수습하는 방법 쯤은 알고 있던 까닭에, 아이의 마지막을 비교적 온전히 맞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다. 급히 연락을 받고 갔을 때는 친구가 어찌할 지 모르는 상태로 패닉에 빠져 있었는데, 저것 또한 이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알기에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지금 나는 명확하게 방관자의 역할이며, 오로지 친구가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게 내가 필요한 이유라고 여겼으니까.


 친구도 흔한 집사처럼 자기 사진은 찍지도 않으면서 핸드폰 갤러리에 고양이 사진만 가득했다. 그래서 기록물이 부족할 일은 없겠다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닌가보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예약하면 보통 아이의 생전 사진을 보내달라 요청하는데, 사진을 고르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그 많은 사진 중에 보내줄만한 사진이 없단다.


 장례식장에 방문하는 보호자들에게 꼭 말하는 게 있는데, "아이의 털을 과하다 싶을 만큼 잘라내서 보관해달라"고 요청한다. 나중에 아이를 떠올릴 때, 남아있는 흔적의 양 만큼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흔히 펫로스를 가장 빠르게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떠올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나 스스로가 바랄 때까지 더 많이 떠올리고 더 많이 찾아보는 게 더욱 건강한 이별을 돕는다.




 이후 많은 시간과 감정을 들여 온전히 이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장례식장도 함께 방문했다. 원래 장례지도사는 감정을 많이 없애야 하는 직업이다. 보호자의 곁에서 굳건히 지키고 있어야 하는게 나의 일인데, 정말 오랜만에 나도 감정에 휩쓸려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언제 찾아올지 가늠할 수 없다. 때문에 혹시라도 이별을 무작정 외면하고 있다면 더욱 이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아이가 건강할 때 할 수 있는 준비와 임종을 맞이하기 전에 급하게 하는 준비는 서로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별을 준비하는 여러 방법들 중에 하나만 권해야 한다면, 나는 '긴 동영상을 찍어두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짧고 보기 좋게 편집한 영상 말고 약 1시간 ~ 2시간 가량 아이의 모습을 그냥 찍어두는 것이다.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좋으니 되도록 오랜 시간 아이의 평범한 일상을 기록한 영상을 한 개쯤 보관하자. 나중에 물밀듯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서 방파제 역할을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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