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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려되었습니다 Dec 11. 2023

밥을 먹지 않는 너에게

 가끔 비반려인에게 "강아지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바뀐게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는게 참 당황스럽다. 우리 아이들도 나로 인해 많은 견생이 변했지만, 나 역시 정말 많은 일상이 바뀌었기 때문. 반려동물을 키울 때 가장 힘든 점이 '혼자 두고 외출하기가 어렵다'라는 통계가 항상 순위권에 올라가듯이, 외출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이외에도 일상이 변하는 정말 다양한 요인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땅바닥에 무언가를 흘릴까봐 경계한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 청소에 굉장히 둔감한 편이라 혼자 살 때 까지만 해도 이곳저곳 다 흘리고 다녔다. 하지만 예전에 둘째가 초콜릿을 주워먹고 급히 동물병원에 달려가 위세척까지 끝내고 난 뒤로, 혹여나 또 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먹을까봐 매일 긴장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


반려동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쩝쩝 거리고 있다면...?


 특히 식탐이 많은 아이와 함께 지낼 수록 바닥을 더욱 경계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식탐이라면 전국구에서 순위를 다툴 수 있는 먹짱(?)이기 때문에 늘 노심초사한다. 평소에도 자기들 놀고 싶은만큼 다 놀아야 하고 먹고싶은거 다 먹고 살다 보니 우리 엄마도 당신보다 팔자가 낫다며 부러워하시곤(?) 했는데, 최근 첫째가 부쩍 식욕이 줄어서 크게 걱정하고 있다.




산책 나와서 기분 좋은 우리 할무니


 우리 첫째는 올 해로 열 다섯을 맞이한 노령견이다. 내 눈에야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애기지만, 세월이 야속하게도 일상 생활 속에서 문득 나이를 먹었다는 시그널을 보내곤 한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꼽으라면 역시 식탐. 예전에는 몰래 먹으려고 숨겨놨다가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귀신같이 달려 왔는데 요즘은 반응도 조금 시니컬하고 먹으라고 줘도 천천히, 아주 느릿느릿하게 먹는다.


 처음엔 어디 아픈건 아닐까 병원도 수십번 들락날락거리며 걱정했지만, 이젠 그냥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또 산책만 나가면 어찌나 그렇게 고집이 심한지. 요즘엔 부쩍 나가지 않으려는 횟수가 늘고 있고, 집에 가자며 버티는 고집도 심해져 종종 곤란한 상황을 연출하곤 한다.


 그래도 밥 좀 안먹으면 어떻고, 산책 조금 안나가면 어때. 그냥 건강하게 오래오래 옆에 있어주면 나는 그걸로도 행복하단다. 이게 다 너가 있기에 하는 고민이자 불만 아니겠니.




 강아지가 나이를 먹을 수록 자연스럽게 안좋은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크나큰 불경처럼 느껴졌다. 물론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최대한 그 순간을 미루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지만, 예전처럼 부정하기보다 남은 시간에 어떻게 하면 더 멋진 이야기를 쌓아 올릴 수 있을지. 어떤 이야기가 우리의 마침표로써 적합할지를 찾는 데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 적어도 우느라 못나눈 이야기를 남겨 두진 말아야지. 혼자 무섭지 않도록 꼭 옆에서 지켜줘야지. 우리는 그래도 우리는 나름 멋진 파트너였다고 하이파이브 해야지.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이 꼭 나중으로 미뤄졌으면 좋겠어. 그러니 밥 잘 챙겨먹자 우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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