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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려되었습니다 Dec 18. 2023

제주도에 없는 것들.

제주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안식처가 없다

 제주도는 유난히 별명이 많은 섬이다. 먼 옛날 제주는 탐라(耽羅)라는 독립된 국가였으며, 조선 초기에 완전히 병합되어 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사를 거쳤음에도 아직 '탐라국'이라고 불린다. 유난히 한라봉, 레드향, 감귤 등 특산품이 유명해 '감귤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학교 때는 제주도민에게 "매일 말 타고 감귤 따먹으면서 다니니 얼마나 좋냐"라고 장난을 치면, "울산에 살면 고래 타고 다니냐"라며 화를 내곤 했다.


 제주는 바람과 여자, 말이 많다고 해서 삼다도(三多島)라고 불린다. 반대로 거지와 도둑, 대문이 없다고 해서 삼무도(三無島)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구에 거주하는 친구는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것보다, 대구 가는 게 더 멀다"며 항상 투덜거리곤 했다. 그만큼 제주도는 가까운 거리에도, 바다 건너 위치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나 다양한 특색이 피어나는 섬이다.


 최근에는 제주도의 전통적인 삼무(거지, 도둑, 대문) 외에도 없는 것들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도가 없고, 고속도로가 없으며, 고라니가 없다(제주도에 있는 건 모두 '노루'다). 그러나 반려인으로서 또 중요한 한 가지가 없는데, 바다 건너 반려동물들이 세상에 마지막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장례식장이 없다.


이 넓은 섬에, 너희처럼 작은 것들을 보내줄 땅 한 뼘이 없구나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찾는 보호자의 90%는 매우 급한 상태다. 아이가 건강할 때는 장례를 깊게 고민할 시간적, 감정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 대부분 아이가 스러지고 난 뒤에 장례식장을 급히 찾아보는데, 이 시점에서 제주도민에게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아이를 쓰레기봉투에 버리거나, 아이의 사체를 싣고 육지로 올라가 장례를 치르는 방법이다. 동물병원에 의탁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의료 폐기물'로 처리되기 때문에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것과 매한가지다.


 통계청 제주사무소가 지난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제주도에 등록된 반려동물 수는 총 53,029마리. 가구 수로 따지면 약 41,000 가구다. 등록된 반려동물만 집계한 결과이므로, 미등록 동물까지 추산하면 제주에서 거주 중인 반려동물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제주도민의 약 15.6%에게는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할 기회조차 없는 셈이다. 제주에서 '동물복지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며 반려동물 친화도시를 내세우는 행보와 완전히 상반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불편한 진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제주는 앞서 2018년 동물 장례식장 설치가 포함된 동물복지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며 동물장묘시설 조성사업 부지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제주시에서도, 서귀포시에서도 반려동물 장례식장은 혐오시설로 배척당하며 매번 백지화 됐다. 민간업자도 여러 번 동물장묘업 건립을 시도하다가 주민 반발로 인해 포기하던 중, 드디어 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에서 유치 희망신청서를 제출하여 반려동물 복지문화센터 사업이 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번엔 예산 문제로 여러 잡음이 발생하며 준공이 미뤄지고 있다.




 물론 반려동물을 반드시 장례식장에서 보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평생 사랑받아 왔을 아이들에게, 또는 네 발로 걷는 아이를 키워온 보호자에게 퀴퀴한 법전을 내밀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수 없이 얽힌 이해관계와 필요성을 떠나, 하루빨리 말 못 하는 여린 것 들에게 자그마한 안식처 하나 내줄 수 있는 섬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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