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5년의 연애에 마침표를 찍고, 6년 차에 접어든 우리. 뒤통수만 봐도 화장실이 급한지 짜증이 났는지 알 수 있는 사이.
절친보다 더 친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짝꿍에게 진부한 물음을 묻는다.
“나 사랑해?”
“당연하지”
“왜?”
“배울 점이 많아서?”
내가 기대한 답은 아니다. 사실 사랑의 이유가 어디있겠냐만 그냥 보통의 갑순이인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예뻐서?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내 짝꿍은 본인의 진심을 답한다. 배울 게 많다는 한마디에 참 많은 게 담겨있다.
나와 일주일 차이로 결혼을 앞둔 친구와 예비 신랑을 만났다. 내 짝꿍도 함께. 참 신기하게도 두 남자는 닮았다.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착실하고 건실한 남자들. 둘 다 외고를 나왔고 공부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반 1등보단 전국 1등을 목표로 공부한 이 남자들. 선생님과 부모님이 안 된다는 길은 가지 않는, 사회적으로 약속한 규범에 대해 단 한 번도 왜?라고 반문하지 않은. 그렇기에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남자 둘을 동시에 만났다.
친구의 짝꿍과 내 짝꿍 그리고 내 친구와 나, 우리 넷은 가까워지기 위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자연스레 상대방이 왜 좋냐는 물음을 던졌고 친구의 짝꿍은 답했다.
“아마 남편분도 똑같이 느끼셨을 것 같은데 회색인 삶에 무지개가 들어온 느낌, 그 느낌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 말에 한참 웃었다. 웃으며 생각했다. 사실 친구나 나나 무지개색을 갖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버텨 내왔는지 나는 안다.
11년을 울고불고 버텨내고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봐 왔기에.
대학 선배들이 후배들은 이래야 해.라는 말에 우리는 납득하지 못하면 반문을 했다. 부당한 것 같은데 왜 그래야 하느냐고. 그 반문의 대가는 생각보다 컸고, 감당하는 것 역시 내 몫이었다.
수저론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지만, 부모의 재력이 자녀 성장 과정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의 재력으로 보지 못할 세상을 나와 내 친구는 스스로 힘으로 봐왔었다. 그리고 그 세상을 누리기 위해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쳐왔었다.
그 고통의 대가는 때론 상흔일 때도 성장일 때도 있었다. 내 경험상 대게 성장이라는 결과를 가져다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내 삶에 다채로운 색을 입혔다 생각한다.
그렇기에 짝꿍에게 때론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도 하고, 본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가 배울 점이 많다는 건 아마 이런 뜻이겠지.
요즘 회사에 부쩍 힘들어하는 신입 동기가 있다. 그는 회사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일이 몰아치는 게 너무 힘들어 그만 다닐까 고민하고 있다 이야기한다.
그에게 나는 무작정 ‘버텨라’라는 말 대신, 그냥 내 경험을 이야기한다. 아가 기자 시절 경찰서를 돌며 선배들에게 쌍욕 먹었던 이야기, 뻗치기를 하며 잡아 온 단독을 선배에게 뺏겼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와 더불어 덕분에 요즘 나는 일이 두렵진 않다. 저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리 개떡 같은 일이 내게 주어지더라도 나는 결국 해낸다는 자기 효능감이란 게 생긴다고 말했다. 그리고 개떡 같은 일을 처리하고 나면 결국 회사는 내 업무 능력을 좋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또 이런 회사에서 내 업무 능력은 곧 연봉으로 이어지니까 결국 내게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막연히 참아, 버텨, 다들 이렇게 힘들어. 이런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결과 본인이 얻은 직접적 결과를 이야기해 줄 때, 자신 삶의 한 조각을 솔직하게 내게 보여줄 때 위로받고 마음이 움직인다.
나도 누군가 나를 위해 삶의 한 조각을 보여준 것처럼 나도 그에게 내비치고 싶었다. 그리고 살아갈 용기와 마음의 위로를 얻길 바랐다.
고통의 결과가 때론 치유하기 힘든 상흔일 때도 있다. 그런데 31살, 지금까지 내 고통은 성장이었고 다채로움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