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을 갑순이로 바꾼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안물안궁일 수 도 있겠지만 그냥 써보기로 했다.
사실 첫 필명은 준비되지 않은 채 글 하나로 작가 통과가 돼 버렸고, 얼떨결에 뭐든 짓자.라는 생각에 생년월일을 한글로 적어봤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써왔다. 그래서인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글이 주제도 없이 중구난방 거진 뭐 일기장 수준이다.
그러다 문득 필명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너무 성의가 없었나 생각이 들었고 뭔가 글의 색을 통일해 볼까 싶어 필명을 고민했다.
영어 이름을 지을까, 한자로 멋있게 풀어써 볼까. 계속된 고민 속 문득 내 글의 색은, 내 글감의 주제는 어떤지를 생각했다.
평범. 무난. 사실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니고 인생이 뭐 엄청 특별하지도 않고. 금수저도 아니고. 내가 종종 입버릇처럼 연애 상담을 할 때 표현하는 단어가 떠올랐다. ‘갑순이, 갑돌이’. ‘필부필부(匹夫匹婦)’를 나름 귀여운 언어로 순화해 표현하곤 했다. 연애 상담을 하다 보면 갑순이와 갑돌이의 이별 사유, 갑돌이를 붙잡는 법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항상 입버릇처럼 답을 해왔었다.
“그냥, 너무나 평범한 갑순이와 갑돌이의 사랑이 끝난 이유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야.”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여자. 일기 대신 타자를 두드리며 그날그날 느낀 점을 써내려 가는 나. 큰 색깔 없이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 때때로 분노하며 사랑하는 이와 행복해하는 평범 그 자체.
그래서 갑순이로 정했다. 너무나 평범한 나를, 어쩌면 누군가의 일기장을 보는 재미로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아울러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사실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를 혼내기 위해서도,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갑순이의 성장일기를 작성하는 행위다.
이 글이 차곡차곡 모여 10년 뒤 내가 이 글을 침대 위에서 초콜릿을 까먹듯 하나하나 다시 읽어가며 이 나이의 나는 이랬구나. 맞아,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며 추억을 회상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