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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순이 Nov 11. 2022

안녕, 뉴욕 2

결혼 전에 필요한 건 장기 여행

뉴욕은 신기했지만, 신기하지 않았다. 뭔가 뉴욕타임스에서 본 것 같은 건물들이 생생하게 보인다는 건 참 신기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일하는 서울 중심부 광화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에 엄청난 감흥은 없었다.


끝없이 나는 대마 냄새, 동양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서양인이 ‘아, 내가 지금 뉴욕에 있구나.’를 실감 나게 했다.


첫날 우리의 계획은 헬기를 타고 시티 투어를 하는 거였다. 그러나 갑작스레 내린 비 때문에 취소됐다. 조금 놀란 건 기상 악화로 뉴욕 여행 일정 내 시티투어를 하지 못해도 환불은 불가하다는 정말 불공평한 조약이었다. 갑자기 취소당한 스케줄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호텔로 향했다. 아침 일찍 도착한 덕분에 체크인을 불가했다. 얼리 체크인에 대해 물어보자 오후 3시에 가능하다고 했다. 5달러를 내고 짐을 맡기고 인근 미국판 아웃백으로 향했다.


서양 정서를 몰랐던 나는 자리 안내도 해주지 않고, 10분이 지나도록 주문도 받지 않는 그들에게 짜증이 났다. 그런 내 짜증을 눈치챈 짝꿍은 되레 내게 짜증을 냈다. 그렇게 뉴욕 땅을 밝자마자 우린 한바탕 다툼을 벌였다.


해결보단 애써 억누르고 호텔에서 얘기한 3시 짐을 찾고 체크인을 시도했다. 갑작스레 그들은 4시에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캐리어 4개, 백팩 2개를 이미 찾아버린 우리는 그냥 로비에 앉아 1시간을 기다렸다.


어떻게든 체크인을 하고 우린 호텔 근방 타임스퀘어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 뉴욕 어딘가 위치한 루프탑바로 향했다. 시티뷰를 보며 칵테일 한 잔. 얼마나 운치 있을까 기대했다.


역시나 기대는 산산이 조각났다. 비 내리는 어두컴컴한, 베트맨 악당들이 곧 하늘을 날아다닐 것 같은 그런 으스스한 분위기. 루프탑바인데 흡연에 관대한 나라답게 계속해서 맡게 되는 대마 냄새. 우중중한 분위기 우린 또 다툼을 벌였다.


신행 첫날부터 모든 게 꼬인 것 같은 느낌, 짝꿍이 말로 쏟아내는 비수, 남들은 흥에 취해 노는 그곳에서 나는 한참을 울어야 했다.


결국, 그는 사과를 했지만 사실 말로 쏟아내는 비수는 사람에게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한국에 온 지 2주가량이 지났지만, 여전히 잊히지 않고 있다. 그렇게 찜찜한 기분으로 애써 분위기를 전환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뉴욕 첫날은, 축축한 비, 우중충한 하늘, 더러운 길거리, 대마 냄새, 눈물만이 남았다.


둘째 날. 눈을 뜨고 기대했다. 오늘은 해가 쨍하게 뜨기를. 커튼을 열고 다시금 시무룩했다. 또 비가 온다. 둘째 날은 미국에 사는 짝꿍의 친구와 함께 오전 일정을 함께하기로 했다. 오빠 친구는 미국에 온 우리를 위해 센트럴파크 투어를 진행해줬다.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걷는, 아니 사실은 경보 선수가 된 듯한 속도로 길을 날아다닌 센트럴파크는 그냥 공원이었다. 엄청 큰 호수가 있고 엄청 큰 다람쥐가 풀밭에서 도토리를 찾고 그 시간 비를 맞으며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혼여행이랍시고 불편한 옷만 챙겨 온 나는 불편한 옷을 움켜쥐고 목마름을 참은 채 열심히 걸어 다녔다.


오랜만에 벗을 만난 내 짝꿍은 즐거워 보였다. 역시 무던한 그는 내가 발이 아픈지, 목이 마른 지 신경 쓰지 못했다. 이게 신혼여행인지, 뉴욕판 대동여지도 만들기에 끌려온 건지 헷갈리는 찰나 스타벅스로 향했다.


초록 인어공주, 그게 뭐라고 한참 참은 화장실을 해결하고 한국보다는 덜 달콤한 바닐라라떼를 마시며 감정을 눌렀다.


오빠 친구는 오후 일을 가야해 안녕을 고했다. 친구가 떠난 뒤 브루클린 브리지를 보기 위해 걸었다. 한 시간 남짓 이동해 본 그 다리는 그냥 다리였다.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어서 그런지 비가 와 추위에 오들오들 떨어서 그런지 한강 다리도 제대로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미국 다리를 보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심연에 잠자고 있던 부정이가 깨어나 몸짓을 한 껏 부풀린 것 같은 그런 느낌에 힘들었다.


추위를 꾹 참고 우린 자유의 여신상 크루즈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그는 정말 잘 걸었다. 땅이 넓어 그런지 한 블록 한 블록이 큰 그곳에서 크루즈 탑승을 위해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또 한 시간가량 비를 맞으며 배를 기다렸다. 이젠 와야 하는 배가 도저히 오지 않은 그때, 한 아주머니가 지나가며 “오늘 배 스케줄 없어~”라고 말해주는 게 아닌가. 영어로 스쳐 지나가듯 말한 그 한 마디가 그렇게 선명하고 뚜렷하게 들릴 수 없었다.


대한민국 공교육에 감탄할 틈도 없이 짜증이 치밀었다. 이걸 타기 위해 40분을 걸었고 비를 맞으며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배가 안 뜬다니.


정말 뉴욕은 나랑 맞지 않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 없이 춥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다리 아픈 그 상황을 견디는 게 한계점에 도달했다.


연심 춥다고 싼 패딩이라도 하나 사자고 말하는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그의 무심함에 상처받았다. 이게 신혼여행인가. 국토대장정 뉴욕판인가.


그렇게 오랜 연애를 하면서도 길게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 몰랐었다. 그의 여행 스타일을. 그도 몰랐겠지, 나의 여행 스타일을.


그렇게 둘째 날 역시 우린 또 불편한 감정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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