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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순이 Dec 29. 2022

브런치가 준 위로

괜찮아. 당신은 해낼 거야.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절대 못할 거 같은데...’

요즘 내가 드는 생각. 아무리 회사에서 멀티플레어를 선호한다지만 멀티에도 정도가 있다 생각해 왔다. 요즘 난 마케터이자 기업 홍보 담당자로 일을 하고 있다. 기업 홍보 담당자야 지난 6년간 해온 일이니 능숙하다면 능숙할 수 있다. 기사를 피칭하고 언론사에 최대한 홍보비 지출을 하지 않고 우리 회사 이름을 언론을 통해 알리는 것.

잘할 수 있는 분야고 잘해왔다 생각했다. SNS, 홈페이지 관리 역시 지금껏 해오던 일이니 조금 귀찮아도 잘할 수 있다. 그 외 사장님의 기고문이나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차피 난 그들의 손이자 입이니까.

문제는 마케터다. 너무나 다른 영역. 구글 애널리틱스가 가장 기본인데 그걸 몰랐다. 친절한 설명도 없이 ‘GA 분석을 기반으로 내년 KPI를 설정해.’라는 지시를 받았다. GA 넌 뭔데 날 이렇게 힘들게 하니? 이런저런 설명 글도 보고 구글 강의도 들었지만, 벌써 언어능력이 퇴화한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에겐 언제나처럼 팀장님이 없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나만의 팀장님을 찾아 나섰다. 그 팀장은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를 진행해 주셨다. 그 덕분에 대략적인 개념을 잡고 열심히 이것저것 클릭을 하며 그 숫자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를 토대로 어떻게 매출을 발생시켜야 하는지 감이 전혀 오질 않았다. 너무나 어려운 숙제, 이 숙제가 끝나기도 전에 PM의 역할이 맡겨졌다. 홈페이지 리뉴얼. 홈페이지 리뉴얼의 모든 부분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물론 결정권은 없지만 언제나 발언을 해야 하는 자리. 그 발언에 대해 까이고 까여 정답을 만들어 내는 자리.

더불어 쏟아지는 각종 리서치 업무에 언론 홍보 업무까지. 오랜만에 내 역량이 달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는데 결과물은 도출해내지 못하고 그저 허덕이는 내 모습에 자존감이 떡락했다. 너무 울고 싶어 누군가 툭 건드리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냥 도망가면 안 되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한계에 스스로를 몰아가면서 좌절과 절망의 늪에 허우적거리면서도 도망치지 않는 이유.

나는 안다. 이 시간을 극복해내고 나면 난 또 레벨업을 할 거다. 지금 이 업무들이 더는 무섭지 않을 거다.라는 믿음. 물론 이 믿음이 자존감을 향상 시켜주진 않는다. 그래서 브런치에 내 일기를 썼다. 딩크족이 되기로 결심한 이야기.

사실 그 글은 퇴근 30분 전 생각의 흐름을 쏟아낸 거였다. 그런데 지하철 탑승과 동시에 시작되는 브런치 알람에 놀랐다.
‘조회수 1000을 돌파했습니다.’

‘조회수 3000을 돌파했습니다.’
.
.
.
‘조회수 10000을 돌파했습니다.’

사실 이런 조회수를 기록한 게 처음은 아니다. 내가 브런치에 처음 올렸던 ‘나는 노예로 살지 않기로 했다’를 시작으로 ‘사표를 냈다’, ‘내 인생에 마지막 고양이’, ‘샤넬 그리고 느낀 점’이 꽤나 높은 조회수를 내게 선물했었다.

그런데 이번 글은 한계에 다다라 울고 싶은 내게 세상이 건네는 위로 같았다. 달리는 댓글, 응원, 높은 공감수는 마치 세상이 내게 네가 힘든 거 우리도 안다는 듯, 네 생각처럼 넌 성장할 거라는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들의 위로가 이렇게 따뜻한 거였나?

지금까진 높은 조회수가 나와도 누군가에게 공유하지 않았었다. 아무도 모르는 타인에게만 보이고 싶은 일기장이기에. 그런데 이번만큼은 자랑이란 걸 하고 싶었다.

대상은 당연하게도 남편이었다. 웹소설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다는 본인 친구의 이야기를 전하며 자기도 웹소설 써보라는 그에게 내 글도 많은 이들이 봐준다고. 다만, 내가 가진 감성이 웹소설이 아니라 브런치인 거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은근슬쩍 자랑이란 걸 했다.

그 자랑을 하며 나도 모르게 으쓱해지는 마음, 그리고 나도 뭔가를 그냥 잘하는 게 있다는 그 느낌에 회사서 내려앉은 자존감이 조금은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남편은 말했다.

“네 글은 문장이 유려하진 않아. 그런데 누가나 편히 읽기 좋은 거 같아. 그 와중 여운을 남기는 한 문장이 있고...”

맞다. 사실 유려한 문장을 뽐내고 싶지 않다. 유려한 문장은 소통을 위한 문장이라기보다 내 언어 실력을 드러내려는 것 같아서. 이건 그저 취향인 거다. 가끔은 미친 듯 유려한 문장에 흠뻑 젖고 싶은 날도 있으니까. 나는 그저 모두가 위로가 필요할 때, 공감이 필요할 때, 타인의 삶의 조각이 궁금할 때 편히 들춰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그 바람이 더 많은 이에게 전달되는 그날까지 오늘을 기록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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