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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순이 May 12. 2023

고양이, 당뇨를 이겨내다.

또 한 번의 기적

고양이와 함께한 지 벌써 11년. 이십 대를 온전히 이 아이와 보냈다.


긴 시간, 사람과의 인연은 멀어지기도 혹은 새로운 연이 닿기도 했다. 그 시간 때론 울고 때론 웃고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 속 유일하게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준 우리 아이. 문득 이 존재가 새롭게 느껴졌다.


최근 기분 좋은 소식이 있었다. 고양이 당뇨 판정을 받은 지 벌써 6개월, 생각보다 당 수치는 빠르게 잡혔고, 덕분에 의사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뵙는다.


지난달 검사 결과 통보 후 나와 남편은 행복한 웃음을 간만에 지었다.


“댕이가 혈당 수치가 아주 잘 유지되고 있는데 조금 낮은 편이라 제 생각에는 가끔 초기 당뇨가 저절로 나아지는 고양이가 있는데 댕이가 그런 케이스인 것 같아요.”


하... 눈물과 웃음이 같이 차오르는 느낌. 대견한 내 아들.


“그렇다고 바로 인슐린을 끊을 수는 없고 인단 용량을 줄여서 한 달 투약 이후 수치 검사해 보고 인슐린 끊는 걸 고려해 보시죠.”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그렇게 댕이는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뤄냈다. 물론, 아직 완치 판정을 받은 건 아니지만, 더 나빠지지 않고 인슐린 용량을 줄여낸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견한지.


댕이가 아픈 뒤 우리의 모든 생활은 댕이 위주로 재설계 됐다. 일정한 시간 인슐린 주사를 매일 놓아야 하기에 한 명이라도 야근을 하는 날 한 명은 반드시 일찍 귀가를 해 댕이 컨디션을 살피고 주사를 놨다.


그 시간이 힘들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사실 그 시간보다 내 아이에게 주사를 놓는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따끔할까. 그 애잔함에 손이 덜덜 떨리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6개월. 우리 고양이는 또 한 번 내게 감동을 선사했다. 언제나 당연하게 있어준 존재. 언제나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


문득 페북에 알람이 떴다. 10년 전 오늘. 이제 막 한 살이 된 고양이를 찍어 올린 게시물. 게시물 속 노란 고양이는 정말 노란색 보송보송한 털에 핑크빛 주황색 코를 가진 아이였다.


오늘의 고양이는 노릇한 갈색에 가까운 털에 장밋빛이 도는 코, 그리고 중간중간 검은 점들이 생겨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양이에게도 남겨져 있었다. 그 세월만큼 고양이와 나 사이 추억도 켜켜이 쌓였다.


엄마 발소리를 알아채고 항상 문 앞에 마중을 나와 있는 우리 고양이.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다. 요즘 집사들 사이에선 ‘우리 아이 대학 입학’이 소원이다. 20살까지만 살아달라는 염원이 담긴 그 말.


잠 잘 때면 항상 내 오른쪽 옆구리 옆에 자리 잡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읊조린다.


“아들, 그저 미안하고 고마워. 그러니까 우리 10년만 더 건강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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