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 차를 타고 함께 출근을 하고 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나는 헬스장으로, 그는 이른 출근을 진행한다.
오늘 아침, 본격적인 장마 시작과 함께 차체 위로 떨어지는 투툭, 툭. 빗방울 소리에 잠시간 추억에 잠겼다.
남편과 사적으로 처음 만난 그날, 그날도 비가 내렸다. 날씨 요정의 대명사인 내가 외출을 나서는데 비라니. 찝찝함도 잠시 눈을 반쯤 가린 우산 너머로 그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총총총. 그리고 건넨 인사. 그리고 우린 세상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새우회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그곳은 엄청난 인파로 입장하려면 1시간가량이 걸린다 말했다. 성격 급한 나였지만, 첫 데이트인 만큼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곳 내게 “다른 곳으로 가실까요?” 제안을 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다섯 걸음쯤 떨어져 있는 족발집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술을 권했다.
내 특기인 소맥 말기를 시전 할까 잠시 고민하다 그래, 조금은 술과 멀어 보이자 싶어 맥주 한 병을 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둘이서 족발과 맥주 2병을 나눠먹었다.
그와 헤어지기 싫었다. 조금 더 그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1차를 계산했다. 그는 그런 날 보더니 “그럼 2차는 세계맥주 집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이에 재빠르게 “네! 좋아요.”로 화답했다.
그렇게 우린 그의 나름 단골집인 세계맥주집으로 향했다. 그는 맥주에 조예가 깊은 듯 여러 가지 맥주를 추천했다. 사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거지라는 신념으로 술을 먹던 내가 맥주 맛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도 추천해 준 뒤 맛이 어떻냐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는 그에게 오만 표현을 쥐어짜가며 “음~ 되게 부드럽네요. 진짜 맛있어요” 등의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한두 시간, 우린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던 중 그는 내게 “기자님은 연애 안 하세요?”라는 물음을 건넸다.
옳다구나, 순간 머릿속에선 풍악이 울렸다. 요즘 말로는 플러팅! 그것을 보내는구나! 그의 물음에 나는 반문으로 답했다.
“계장님은 연애 안 하세요?”
“아, 전 헤어진 지 얼마 안 됐어요.”
순간 머릿속에서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마음 한 켠에서는 숙제를 안 해왔는데 숙제 검사를 하는 선생님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그 가라앉음을 느꼈다.
끝나는 건가, 이렇게 끝나는 건가. 뭐지, 플러팅이 아닌 선긋기 위한 질문이었나. 아주 찰나의 순간 수능 때도 돌지 않던 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하지만, 연애사 포기란 없던 나였기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다시금 그에게 질문을 했다.
“아, 진짜요? 언제 헤어지셨는데요?”
“3달 조금 넘은 거 같아요.”
“아, 오래 만나셨어요?”
“아니요, 한 3달 정도? 얼굴은 자주 못 봤어요.”
“왜 헤어지셨어요?”
“그냥, 성격이 안 맞아서?”
“백일이면 크게 타격은 없으시겠어요.”
“네, 그렇죠. 기자님은요?”
“하하, 저는 언론고시 준비에 마와리 도냐고 연애 생각도 없었어요. 이제 출입처 배정받고 나니 연애하고 싶어요!”
지금 생각해도 나 스스로가 가증스럽지만, 저 날의 용기 덕분에 지금 내 짝꿍이 내 곁에 있는 거겠지 싶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비는 계속 내렸다. 이내 그는 함께 나가 걷자고 제안했다. 그와 나란히 걷고 싶었던 나는 우산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태연스럽게 그에게
“어머, 우산이 없어졌는데 남의 우산 들고 가면 절도겠죠?”
“아휴, 네... 제 것 같이 쓰시죠.”
그리고 그에게 찰싹 붙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바닥에 고인 빗물 위로 비치는 거리의 불빛들, 거리 곳곳 버려진 담배꽁초. 그 모든 게 낭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밤은 짙어지고 우리의 만남도 색을 띠기 시작했다.
아직도 토독 토독 빗방울이 창문을 두들길 때면, 우리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26살,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 순수함과 약간의 가증스러움을 가진 나. 29살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가 경찰이었던 내 짝꿍. 플러팅인 줄도 모르고 내 마음도 모르고 그저 해맑게 플러팅을 날리던 이 남자.
우린 그렇게 32살, 35살 조금은 더 무르익은 사랑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