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죠.”
모든 말에 그리 답하는 사람이 있다. 회사에서 지칠 때면 친한 그에게 간다. 그는 묵묵히 본인의 할 일을 하며 내가 토로하는 말들에 그리 답한다.
너무 속상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럴 수 있죠.”
그는 본인이 힘들었을 순간에 건네는 위로에도 저렇게 답을 한다. 어느 날 그의 업무 실수를 바로 잡기 위해 철야를 한 날이 있었다.
그에게 그래도 집은 보내주지라는 말에 그럴 수 있죠. 저 때문에 팀장님이 고생하신 걸요.라고 답했다.
처음엔 그가 염세적인 사람이라 생각했고 다소 좀 불편했었다. 모든 말에 그 어떤 감정 없이 그럴 수 있죠라니. 내게 거리를 두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나무 같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그곳에서 계절에 따라 색은 변하지만 튼튼한 뿌리는 변하지 않는 그런 나무.
변하지 않는 그 마음, 세상에 대해 가타부타 판단하지 않는 그런 나무. 화가 날 법한 상황에도 그럴 수 있죠라는 말로 넘어가는 그런 사람.
그 덕분에 이제 그럴 수 있죠는 내게 마법 같은 말이 됐다. 부정적인 상황이 한순간에 괜찮아지는 마법. 누군가 괜스레 날 미워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생각한다.
‘그럴 수 있지. 내가 미울 수 있지.’
업무가 내게만 과중되는 때에도 짜증과 스트레스 대신
‘그럴 수 있지. 이 또한 내 업적이 되는 거니까.’
이리 생각하니 예민한 성격 탓에 스트레스가 많은 내가 평온해졌다. 단단해지는 게 느껴질 만큼.
남편이 최근 회사 생활에서 힘든 점을 털어놨다. 사람 때문에 힘들다. 이렇게 단단한 사람이. 그러나 내 남편도 예민한 편. 그에게 알려줬다. 회사에 이런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처음엔 너무 시니컬해 짜증 났는데 하면 할수록 마음이 단단해지는 마법의 말인 것 같다고.
“그럴 수 있죠.”
그 사람이 불필요한 감정을 내비치며 당신을 괴롭히려 한다면 그 말 한마디로 그렇게 흘려버리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