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내게는 그런 엄마가 없다. 뭐 이 또한 운명이려니 하고 애써 담대한 척 살아가지만, 아주 간혹 아쉬움이 남는다. 나도 그런 따뜻한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며 또 어쩔 수 없지! 털어 낸다.
그런 나였기에, 집밥에 대한 특별한 이야깃거리나, 추억은 없다. 그런 내가 어떤 사람을 통해 ‘집밥’을 그리게 됐다.
그의 삶은 따뜻한 된장찌개 같다. 항상 칼퇴를 하며, 사용자인데도 직원들에게 야근을 강요하지 않고, 야근을 피할 수 있음 피하는 것도 요령이라 말하는 그가 참 신기했다.
어느 날, 그가 항상 칼퇴하는 이유를 듣게 됐다. 저녁만큼은 아내와, 어머니와 함께 먹는다는 것.
매일 저녁 따뜻함이 가득한 집에서 어머니와 아내가 먹을 따뜻한 밥 한 끼를 본인 손으로 지어내기 위해, 그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자 자명종의 알람마냥 정각에 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면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생각난다. 묵직한 무게만큼이나 넉넉한 검정 뚝배기에 멸치로 우린 육수 세 컵, 된장 두 스푼, 고추장 반 스푼을 풀어내고 그의 투박하지만, 따뜻함을 닮은 칼솜씨로 하얀 두부 썰어 4조각 올려 두고 그 옆자리엔 씻어서 툭툭 털어 꽁지 싹둑 썰어 놓은 팽이버섯 얌전히 누여 놓고, 한여름의 청량함을 닮은 애호박 반으로 잘라 서걱서걱 썰어 한 줌 던져 놓고, 그 위에는 새하얀 양파 깍뚝, 깍뚝 썰어 위에 송송 부여 놓고 한참을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이면 보글보글 소리와 집안 가득 퍼지는 약간은 구릿하지만, 마음속까지 따뜻한 된장찌개 냄새가 떠오른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식지 않고 온기를 유지해주는 뚝배기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랑.
가정불화다, 가정 폭력이다, 불륜이다, 불륜도 사랑이다 등 ‘집밥’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심심찮게 뉴스에 오르내리는 요즘 그는 내가 집밥을 그리게 할 만큼 따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그의 식탁에서 수저 하나가 사라졌다. 어머니가 별나라로 여행 가시는 바람에 이제 식탁에 수저는 2벌뿐이다. 수저는 하나 줄었지만, 그가 풍기는 집밥 냄새는 여전하다.
단지, 저녁 당번이 아내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 그의 아내가 하루의 노고를 달래는 밥 한 끼를 지어내고 나면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집밥을 공유한다. 그 따뜻한 시간이 끝나면 설거지는 그의 몫이다.
설거지가 끝나면 부부는 손을 마주 잡고 산책을 나선다. 20년 가까이 산 그 집을 나서는 순간 가족과 다름없는 이웃들과 도란도란 일상을 주고받는다. 강을 따라 쭈욱 들어선 길을 거닐며, 함께하지 못한 오늘 당신의 하루, 오늘 내 하루를 나눈다. 이런 일 때문에 아팠다, 투정도 부리고, 이런 문제로 고민이다, 상담도 받으며 둘을 교감한다.
그런 그의 일상이 공유될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집밥을 그리고 있다. ‘된장찌개’ 냄새나는 그런 내 집밥을 말이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진 못했지만, 그런 가정을 꾸릴 수는 있을 거란 근자감이 생긴다. 내가 반려인으로 함께하고자 약속한 그와 반려동물 복댕이. 셋이 함께하는 저녁상을 조심스레 그려 본다.
작지만 깔끔한 주방에서 나와 반려인을 마주 앉고 댕이는 내 옆에 앉아 우리의 이야기에 동참하는 모습.
맛있는 한 끼를 나누며 함께하지 못한 오늘을 교류하며 공감하는 것. 내가 너의 힘이 되고 네가 나의 힘이 돼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