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이의 당뇨 정복기.
그 힘든 시간을 나는, 댕이는 견뎌냈다.
마지막 혈당 곡선까지 아주 완벽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원래 하려 했던 스케일링과 귀에 난 종괴를 떼어내려 다시금 스케줄을 잡았다.
케이지에 들어간 순간부터 비명을 지르는 고양이를 달래 가며 다소 좀 먼 거리에 있는 댕이 병원으로 향했다.
이 먼 곳에 있는 병원을 선택한 이유, 친구가 수의사로 있다. 적어도 그는, 나를 아는 그는 댕이를 학대하진 않을 거란 믿음. 혹여나 댕이나 무지개다리를 건너도 나 혹은 수의사 때문이 아닌 그저 고양이의 명이 그랬을 거라 안심하고 싶은 이기심이었다.
차로 30분 남짓, 그 거리를 달려간 그곳, 초기 검사에서 댕이는 수술이 가능하다는 확답 아래 댕이를 입원시켰다.
이게 불찰이었다. 지난 10년 넘는 시간 단 한 번도 넥카라 씌우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을 전하지 않은 멍청한 내 실수였다.
갑작스레 달라진 환경, 목에 씌어진 넥카라, 주변에서 울부짖는 개와 고양이의 울음소리. 댕이를 패닉에 빠트릴 모든 요건이 충족됐다.
결국 댕이는 자신의 생 손톱 3개를 뿌리째 뽑아가며 벗을 때마다 다시 씌어지는 넥카라를 벗었다.
댕이가 받으려던 스케일링과 종괴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손톱이 뽑힘으로써 큰일이 됐다.
수술 전 걸려온 전화에 그 사실을 전달받았다. 결국 피칠갑을 해서 안족에는 열 수도 없는 입원실 문을 부수고 나와 밖을 배회한 댕이에 대해.
‘미안, 엄마가 미안해. 말할걸... 댕이는 넥카라 절대 씌우면 안 된다고 말할걸...’
안 해도 될 고생을 내 욕심 때문에 시켰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부랴부랴 퇴원을 시킨 고양이를 품에 안고 사료를 거부하는 아이를 달래고자 츄르를 먹었다.
츄르를 다 얻어먹고 나서도 한참 품에 안겨 그릉대는 댕이를 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네 입장에선 엄마를 그저 사랑하고 믿어 품을 내어 준 건데, 엄마는 이유 없이 널 아프게만 하는 걸 텐데 여전히 날 믿고 이렇게 품에 안겨 사랑을 말해주는구나.
아린 손톱, 귀에 달린 실밥. 이 모든 게 네 입장에선 그저 엄마가 준 고통인데도 넌 여전히 날 믿고 품을 내어주는구나. 아프게 해서, 너에게 이런 고통을 느끼게 해서 미안해. 너무 미안해.
‘엄마니까. 엄마가 이런 거면 날 위한 거겠지. 엄마, 나 괜찮아. 난 당뇨도 이겨낸 고양이니까.’
그런 생각조차 못하는 게 반려동물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댕이의 그릉거림이, 따뜻한 체온이 내게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아 죄책감이 눈물에 녹아내렸다.
댕이는 다시금 따끔하고 따뜻함으로 내 마음에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