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 일기 3
자식도 부모를 버릴 권리를 주세요.
한동안 여러 일로 마음이 일렁였다. 글을 쓰지 못했다. 머릿속은 안개로 자욱하고 어질 하고 압력기로 찍어 누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무런 의욕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그런 내게 날아온 노란 편지. 그 편지는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 엄마는 네 업보, 네가 숨는다고 끝나지 않아.’
그 노란 편지는 나라가 내게 지난 악몽을 소환시켰다. 엄마라는 인간이 응급의료비를 지원받고 내지 않았단다. 그래서 딸인 내가 내야 한단다.
손을 덜덜 떨렸지만, 입밖으론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가 엄마란 인간 아래 학대받을 땐 그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 따윈 없었는데 이 악물고 버텨 그럴싸한 인간으로 살아남으니 엄마라는 이름으로 날 옭아매는구나.
죽지, 죽어버리지 아직도 살아서 살겠다고 응급실을 갔네. 그래 놓고 돈은 나한테 내라고...? 매일 몸이나 팔라 말했던 그 입, 싸늘하기 그지없던 눈빛, 학교 폭력 피해자였던 내게 네가 그 모양이니 당해도 싸다 말하던 그 저주받은 순간이 순간 주마등처럼 흘렀다. 이내 무차별하게 쏟아지던 발길질, 주먹질.
꾸역꾸역 삼켜내고 악으로 오늘을 만들었는데 또 내 삶에 끼어들어 같이 수렁으로 빠지자고...?
이를 악물고 하루를 견뎠다. 그리고 내게 보란 편지를 보낸 곳에 전화를 했다. 정말 내가 내야 되냐. 겨우 잊고 살았다. 상담원은 내게 공적으로 증명을 해야 한다 했다. 접근 금지 신청이라던지, 경찰 신고 기록이라던지.
24년을 맞았는데 왜 경찰에 신고 한 번을 못했을까. 왜. 왜 그 기록이 없을까. 새로운 남자와 도망쳐버린 엄마를 상대로 나는 왜 접근 금지 신청을 안 했을까. 왜.
갑자기 버려진 나는 먹고 사는데만 급급했으니까. 그렇게 먹고살고 있는 내게 국가는 그간 엄마란 인간이 내지 않은 건강보험료 몇백만 원을 청구하지 않았나. 그걸 갚기에도 허덕였는데. 접근 금지 신청이라니. 정신과 상담 기록이라니.
결국 또 내 탓이다. 내가 이런 부모 밑에 태어나서, 멍청해서 신고 한 번 할 생각하지 않아서, 법 위에 잠자고 있어서. 하루 벌어 하루 살아내야 했던 내가 소송을 했었어야 했다. 멍청한 나란 인간. 무한한 자책, 그냥 그 사람 말대로 몸이나 굴리며 함부로 살았으면 국가가 내게 보내는 독촉장 따윈 신경도 쓰이지 않았을 텐데. 왜 열심히 살아서, 왜 인간답게 살겠다 발버둥 쳐서 이 노란 편지 속 내 통장을 압류하겠다는 협박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살아남아줘서, 잘 커 줘서 고맙단 말은 도대체 누구한테 들어야 할까. 나는 보호받지 못했는데 나는 도대체 왜 보호해야 할까. 나도 똑같이 곁에 두고 매일 매질하며 폭언을 쏟아내면 그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들까, 상처가 치유될까? 나라가 내게 보내는 협박 편지가 더는 스트레스가 아닐까?
마음속 깊이 가둬뒀던 부정이가 튀어나왔다. 그 부정이가 날 잡아먹으려 한다. 그냥 이 하찮은 삶이 버겁다. 그런데 이젠 내 곁에서 내 손을 꼭 잡고 난 항상 네 편이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매일같이 나와 함께하는 2년, 3년 뒤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생겼다. 내게 상처만 준 사람 때문에 이 삶을 놓는다면 아무 대가 없이 날 사람해준 이에게 상처만 남기는 거겠지.라는 결론에 다 달았다.
결국 지금이라도 나는 소송을 진행하려 한다. 학대에 대한 지난날. 증거는 없지만 증인은 많다. 어린 날 내 멍 자국을 보았던 아빠, 매일 같이 쏟아지는 폭언과 폭력 속 덜덜 떠는 날 보던 동생들, 대학 시절 남자친구와 싸운 날이면 전화해 남자친구란 인간까지 합세해 내게 쏟아낸 폭언을 목격한 친구.
이 결심이 쉽진 않다. 또다시 그 인간이 내게 들러붙을 빌미를 주는 것 같아서. 영원히 그냥 이렇게 조용히 삶에서 지워지길 기다렸다. 그런데 이 거지 같은 법은 부모를 버릴 권리따윈 없다고 한다.
부모는 보호시설에 버려버리면 끝인데,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가 없다.
적어도 이런 부모는 쉽게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