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게 행복인 걸까?’ ‘나는 우리 고양이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라는 물음부터 ‘나는 연애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 사람일까?’ ‘왜 나는 ‘좋은 게 좋은 거지’가 안되는 사람일까?’라는 나 자신에 대한 성찰까지.
머리가, 생각이 쉬질 못한다.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그 복잡한 생각 중 단 하나만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피곤스럽게 사는 나는, 사실 이런 피곤스러운 내가 좋다. 어느 한 부분에 치열하게 고민할 줄 아는 내가. 내 삶에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고자 하는 내가 참 좋다.
그런데 요즘은 사실 좀 많이 지쳤었다. 이런 저런 개인적인 문제들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고, 사표를 던졌다.
그럼에도 나는 쉬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생각했다.
치열하게
피곤하게
그러 내게 ‘허클베리핀’이 다가왔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세상을 유람하던 그 허클베리 핀을 모토로 만든 스타트업.
이 회사의 요지는 농촌 관광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고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해당 지역의 농가를 선택해 농가에서 5시간가량 일손을 돕고, 이틀 간의 숙식을 제공 받는다.
참여했다. 그리고 떠났다.
봉화.
정말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직행 버스조차 없는 곳.
나를 아는 이가 없고, 거짓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
‘자유’
도착한 농장은 말 그래도 ‘농촌’이었다. 입이 벌어질만큼 아름다운 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단풍잎은 인위적인 노란색, 빨간색 따위로 설명할 수 없는, 정말 자연의 색 그 자체로 혼을 빼앗았다. 그 산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었다. 녹조라떼 등으로 뉴스에서만 보던 그 강을 눈으로 직접봤다.
햇살이 강에 비추자 물은 미친 듯이 반짝였다. 빛을 따라 반짝반짝. 이런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본 적이 있나.
피곤에 절어 한강다리를 지나는 그 순간에도 귀를 틀어 막고 눈을 감고 영혼을 놓지 않았나.
풍경을 맘껏 즐기고 본격 사과 따기에 나섰다.
나무 가지에 달린 사과는 조심스럽게 가지에서 따서 가위로 꼭지를 짧게 잘라야 한다.
그리고 바구니에 살살 놓고 바구니가 차면 선별 작업을 하는 곳으로 바구니를 갖다 놓는다. 그리고 새 바구니를 얻어온다.
무한 반복. 세상 귀여워 보이는 목에 레이스 끈을 묶는 밀짚 모자를 가져갔는데, 나뭇가지에 이리 뜯기고 저리뜯겨 나중에는 거의 뭐 ‘망나니st’를 선보였다.
따다보면 허리도 좀 아프고, 목도 좀 마르고, 머리는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진흙밭이라 뒤뚱뒤뚱 걸으며 헥헥대고.
그런데 그날 저녁, 처음으로 간만에 쉼다움을 즐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가! 드디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심 조심, 나뭇가지가 사과에 상처를 낼까, 혹시 조심스럽게 놓지 못해 사과에 멍이 들까, 꼭지를 자르는 손길도 아무 생각없이 조심조심.
머리가 쉬었다. 드디어 쉬었다.
20살 이후로 쉬어 본 적 없는 내가 쉬었다.
우리는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간다. 그런 치열함 속에 쉬고 싶다 간절히 바라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영혼을 축내가며 집을 나선다.
그런 축냄이 계속되면 어느순간 방전이 된다. 방전되고서도 무언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런 우리에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겐, 봉화가, 그리고 사과가 그런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