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참 어렵다.

by 갑순이

지겨울 만큼 연애했다.

낭랑 18세 수학을 잘하는 모습에 반해 그 옆에서 공부하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고, 또 공부했다.

인 서울 치대를 간다는 그를 따라 치대는 불가능 하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그 대학에 가려 공부했다.

불량한 아이들에게 빵셔틀을 하고 있는 그를 의자를 집어던지며 구출해내기도, 한 번만 더 빵셔틀 시키면 얼굴이 빵떡이 될 때까지 맞는 수가 있다며 포효하기도 하면서 개나리 꽃만 보고도 깔깔대며 웃어 대는 그런 풋내나는 사랑을 했다.

그게 내 첫사랑이었다.

그를 위해 1년 6개월 간 정말 순수한 진심을 다했다 회상한다.

그런 내 첫사랑은 어이없게도 바람이 났고 그렇게 떠났다.

끔찍했던 그와의 이별 이후 다른 이성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고 21살부터 했던 수 많은 연애는 한 달, 혹은 세 달만에 토막나기 일쑤였다.

매번 진심이라, 최선이라 말했었다.

지금 밍구를 만나며 느끼는 건, 그때의 난 진심이었다, 최선이었다. 홀로 합리화를 했을 뿐이다.

내 자신을, 내 진심을 내보일 용기가 없었다.

'네가 다른 여자 애를 애칭으로 부르는 게 싫어.'

'다른 여자 술자리에 부르는 거 싫어.'

'하루 종일 연락 안되는 거 싫어.'

그 수많은 말들을 내 뱉지 못했다. 꾸역 꾸역 삼켜냈다.

그런 말을 내뱉으면, '넌 쿨하잖아? 아니야? 어? 내가 알던 네가 맞아?'로 돌아 올까봐.

그렇게 홀로 상처 받고 싶지 않아 셋을 셋다.

'내 뒷담화하는 여자 애랑 왜 술을 먹어?'

하나.

'왜 종일 연락이 안돼?'

둘.

'술 먹으면 취할 수 있지, 왜 여자는 그러면 안된다 말해?'

셋.

"우리 헤어져."

그렇게 수십번의 연애에 혼자 마침표를 찍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언론고시 생활이 시작됐고, 기자가 되며 애인을 만들 엄두도 시간도 없었다.

노숙자들과 구분 안되는 꼬라지로 속칭 마와리를 도니 생길 썸조차 없었다.

자리를 잡고 사건 기자로 경찰서 출입 기자가 된 뒤에야 밍구를 만났다.

밍구와 난 살아온 세계도, 살아온 방식도 달랐다.

"넌 모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건 다해보며 사는 거야."라며 자유와 방관 그 사이 줄 탔던 내 부모님.

일찍이 아들의 영특함을 알아보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운 밍구네 부모님.

8시간 자면서도 서울대를 바라봤던 밍구.

6시간 자면서도 인서울 조차 간당간당했던 나.

입시 제도에 특화됐던 밍구.

입사관을 노렸던 나.

너무나 달랐다.

그 다른 우리가 갑작스레 하나가 되었고 함께 걷기로 한 뒤 3개월 동안 그간 해왔던 셋을 수십번은 셌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매일 만나야 했던 그에게 쉽게 이별을 고할 수 없었다.

그렇게 참아내고 또 참아내며 6개월이 되던 어느 날, 폭발했다.

그간 불만이었던, 나홀로 삼키고 있었던 모든 걸 쏟아냈다.

서운하다고, 너의 행동에 상처 받는다고, 나를 존중해달라고.

그게 처음이었다. 내 속을 내보이고 당신에게 해결책을 달라 요구 한 건.

그렇게 2년 동안 지독하게 싸워댔다.

아픈 말들을 골라하며 상처주던 싸움은 시간이 지나자 "너의 행동에 난 이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이래"로 발전됐다.

그렇게 우린 조금씩 조금씩 네가 내가되는 내가 네가 되는 그 길을 향해 무척 치열하게 걸어왔다.

수십번 실패한 뒤에야 답을 알았다.

난 내 진심을 내 비치지 않았다. 상처받기 싫어 도망치기 급급했다. 괜시리 찌질해 보일까 무서워 뒷걸음질만 쳐댔다.

아프면 아프다, 속상하면 속상하다, 질투나면 질투난다 말하는 법을 이제야 배웠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진심은 비로소 소통을 통해 발현된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도 연애가 쉽진 않다.


여전히 밍구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그에게 상처받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이러다 내가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싶은 분노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린 아직 함께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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