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층에 사는 내가 층간소음을 겪을 줄이야.

by 갑순이

3층 건물에서 3층에 산다. 이사를 온 뒤 처음 맞는 주말.

'쿵!!! 쿵!!! 쾅!! 쾅!!! 쿵쾅!'

지진이 난 거다!라는 확신에 허벌떡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사는 반려묘도 허벌떡 일어나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진 채로 나 한 번, 현관문 한 번 두리번거리며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물었다.

'나 3층인데... 이 건물이 울리는 쿵쾅은 뭐지?'

그 소음의 근원은 아랫집이었다. 한 여섯 살? 일곱 살쯤 됐을까?

아랫집 아이에게 그 조그만 공간은 키즈카페였다. 고양이의 우다다처럼 우다다를 하며 줄넘기를 하며.

미쳐버릴 것 같았다. 평일 평균 수면시간 5시간. 그 부족한 수면을 채우는 유일한 나의 주말이 무너졌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짜증에 포효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스트레스를 안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리고 일평생을 아파트에서 산 나의 대빵께 이런 현실을 토로하며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그런 내게 그는

"김 기자도 그랬을 거야. 조금은 너그러이 참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일평생을 한 아파트 한 자리에서 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줬다. 두 아이를 키우며 절제한다 할 지라도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 같지 않게 초원 위 망아지 같았고 그가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미안함 표시였다고 한다.

그런 그와 그의 아이들에게 아랫집은 기다림을 선물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 그의 윗 집에 아이가 들어왔었다고 한다. 자신이 받은 그 기다림을 윗 집에 선물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간 나도 그랬구나. 그랬었겠구나. 사실 시골 단독주택에 자란 덕에 뛰지 말란 엄빠의 꾸지람은 식당에서만 들었지만.

그렇게 또 주말이 왔다. 밍구와 꿀잠을 자다 또 지진이 난 것 같은 소음에 셋이 동그래진 눈으로 부스스 짜증스레 깼다.

어떻게 하지. 도대체 어떻게 하지. 이런 식으로 매주 주말을 망칠 순 없다. 그때 마침 회사에서 준 사과 한 박스가 도착했다. 1인 가구인 내가 사과 한 박스를 소비할 순 없다.

머리를 빗고 옷가짐을 정리하고 사과 박스를 챙겨 아래층으로 향했다.

띵동

"누구세요?"

"윗 집이에요."

문은 열렸고 아주머니 뒤로 숨은 아이와 그 옆에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서있었다.

사과 한 박스를 아주머니의 품에 안기며 부탁했다. 평일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데 유일하게 주말에 자는데 아이가 뛰는 소리에 깬다. 정말 죄송하지만 주말에는 점심때까지만 좀 기다리려 주실 수 있으신지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그녀는 오히려 미안하다는 듯 몰랐다며 주의를 주겠다 약속했다.

다시 집으로 올라와 나아 밍구는 매트리스를 시켰다.

땅이 울리는 소음에서 조금은 멀어지고자 나름의 노력이었다.

그날 건넨 사과 한 박스와 부탁은 강력했다. 지금까지도 주말에는 한 시께나 돼서야 건물이 울리기 시작한다.

아랫집에선 종종 할머니가 만든 수세미가 깜짝 선물처럼 내게 온다.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가 이제 더는 비에 젖지 않는다. 야근이나 회식으로 늦게 되는 날이면 아주머니는 그 빨래를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여 놓아준다.

작은 기다림이 더 큰 배려를 낳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마냥 날 세우고 마냥 화로 서로를 대하기보다 때론 서로에게 진솔하게 부탁해 봄이 어떨까.

내가 난생처음 겪은 층간 소음은 이렇게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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