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사랑하는 다민이. 내게 많은 배움을 주는 다민이. 요즘 코로나19 속 피로감을 견디는 내게 떠오른 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다민이는 필요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 최소한의 관계는 맺되 마음은 나누지 않는다. 그의 친구는 나와 그의 연인 정도라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저 그 아이의 성향이라 생각했다. 여느 날처럼 우린 술을 펐고, 그에게 물었다.
“넌 왜 사람들이랑 마음 나누는 게 싫어?”
“내가 너무 아파. 때로 친해지면 그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말로 칼을 꽂을 때가 있잖아. 그게 나한테 느껴지면 난 한동안 마음이 너무너무 아파. 끔찍해.”
언제나 나에게 느낌표를 주는 그녀지만 그날 그녀의 말은 너무나 울림이 컸다. 남이 상처 받을까 마음을 나누지 않는다. 남의 상처가 그대로 전이돼 본인이 너무 괴로워 더는 연을 만들지 않는다.
안다. 내가 때때로 스스로에게 취해 헛발질을 할 때면 나보다 아파하며 내게 경고음을 울린다.
“정신 차려!!!!”
이 때문에 내가 유일하게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토로할 수 있는 사람.
최근 그녀와 너무나 대조되는 사람을 보며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했다. 한없이 하하호호 일명 개드립은 너무나 가볍다. 반면, 아픈 이에게 힐난을 가하는 말은 천근 바위를 내리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회사 내 동료 가족 중 한 분의 직장 동료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밀접 접촉자도 아닐뿐더러,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인데 누가 그를 탓할 수 있는가. 그저 그 가족의 건강이, 그녀의 마음의 짐이 얼마나 무거울까 걱정돼 되지도 않는 말로 그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
그 사실은 회사 전체에 공유됐고 그 상황에 부장이란 사람은 답을 달았다. 너무나 차가운 말, 너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 말.
충격이었다. 검사를 앞둔 가족을 불안하게 지켜보며 혹여나 자신이 전파자가 될까 두려워하는 이에게 어쩜 저리 차가운 칼을 꽂을 수 있는지.
혹여 예민한 감성을 가진 내 착각일까 세상 무던한 밍구에게 보냈다. 어떠냐고, 이 말이 어떻게 느껴지냐고.
밍구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 회사는 왜 이렇게 감정이 결여된 사람들이 많아? 공감능력이 없네. 인간들이.”
어떤 이는 자신의 말로 혹여 타인에게 상처 줄까 무서워 더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했다. 어떤 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로 상처를 내고 휘두른다.
나이가 든다고 말의 무게를 아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건 아니다.
어리다고 철없다고 모든 걸 이해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우린 읽고 공유하며 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