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앞두고 회사 내 고마웠던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달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저 사람 밑에서 큰 화를 입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당신들 덕분입니다.
뭐, 사실 끝을 나쁘게 맺고 싶지 않았다. 부장을 제외한 다른 문제로 이직하는 건 아니었으니.
그날 내게 다른 부장이 술 한 잔 어떻냐고 내 동지를 통해 전해왔다. 그렇게 술자리를 가졌다.
그래, 오늘은 네가 힘들었던 이야기 털어놓아란 허락. 털었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여러 번의 이직을 통해 이미 깨달았고 다름에 대해 그냥 넌 그렇구나로 넘길 수 있었다 운을 떼었다.
가장 문제는 없는 말로 날 범죄자를 만들고 그걸 공론화해 매번 처형대에 올렸다는 것. 돈에 환장할 나이도 아니고 날 사랑하고 믿어주는 이들을 돈 몇 푼에 잃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말했다.
그리고 실무 경험도 능력도 없으면 현장을 뛰어 본 날 믿고 같이 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내가 내는 아이디어, 기획에 대해 나대지 말라는 말로 손발을 묶어 지금처럼 죽어 있는 홍보로만 가려하는 것.
고작 두 명인 부서에서 자신은 실무를 할 수 없다 선을 그어 놓고 뒤에 가선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 거짓으로 모함하는 것.
언론 유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기자들에게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과 비아냥은 물론 회사에 대한 험담까지 늘어놓는다는 것.
이런 사람 밑에서 체계는커녕 암만 배울 것 같아 내 미래를 위해 이직을 고민한 지는 꽤 됐다 말했다.
반면교사라지만, 근묵자흑이 더 큰 것 아니겠느냐.
너무나 충격받은 듯한 그 부장은 왜 이제야 이야기하느냐, 이 정도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퇴사 조치까지 고려돼야 할 상황인데 라고 말했다.
매번 그가 이르고 공론화를 통해 일이 커졌을 때 모두가 입 모아 말했지 않느냐.
"쟤가 이상한 거 알아. 그런데 그래도 네가 참아."
사람의 일로만 보지 않았느냐. 난 성장 가능성과 내 평판을 생각해야 했다.
오락가락하는 그 인간에게서 날 지켜야 했다. 난 날 지키는 것이 이직이라 생각했다.
기자와 관계 맺는 법도 모르는 이가, 내가 쓴 글의 맞춤법 조차 보지 못하는 이가, 자기 글의 주술 호응 조차 모르는 이가 홍보 부장으로 앉아 있는데 난 무엇을 바라야 했는가.
일을 하기 위해 뒤에서 몰래몰래 그보다 윗선과 비밀 작전처럼 눈치 보며 일을 해야 했는데, 그 일이 끝나면 미친 듯 괴롭히는 그 괴롭힘에도 난 참았다.
참았기에 이직을 결심했다.
내 말에 그는 말이 없어졌다. 삶을 살며 매번 배움을 얻고자 한다.
난 누군가에게 참으라 말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그 문제가 구조와 체계, 관료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고쳐달라 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참는 건 미덕이 아니다. 삶에 대한 권태로움 조차 참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새로움을 더하고 무엇이 날 권태롭게 하는지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가만히 있으라. 네가 참아라.
이만큼 사람을 옭아 매고 바보로 만드는 언어가 어디 있을까.
움직여야,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