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앞뒀다.

내가 생각했던 서른 살의 나

by 갑순이

서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 달 반이 지나면 서른이다.


열아홉에서 스물이 될 땐 얼마나 설레고 신났던지. 어른들이 못하게 했던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됨에 짜릿하기까지 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 추위 어른 흉내 내며 진하게 화장을 하고 몸에 딱 붙는 원피스에 지금은 신지도 못하는 하이힐에 얇디 얇은 코트를 걸치고 주민등록증을 손에 꼭 쥐고 술 집 앞에 줄을 섰었다.


추위보다 어른들의 세계에 당당히 입성한다는 그 사실이 그렇게 간질간질 거렸다.

서른을 앞둔 나는, 설렘도 떨림도 없이 두렵다. 막연하게 꿈을 꾸던 시기 내가 그리던 서른은 드라마에 나오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최저임금이 최대임금인 대한민국을 모르고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할 만큼 돈을 벌 거라 생각했다. 매년 한 번쯤은 당연하게 해외여행을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사는 나일 거라 그렸다.

막상 서른을 앞두니 지금의 나는 어떤가? 너무나 현실에 잘 찌들었다. 전세자금을 대출 받아 매달 상환해야 하는 이자를 계산하고, 거대한 산처럼 눈앞에 놓여 매달 통장에 퍼가요~♡라는 발자취를 남기는 한국장학재단의 빚을 갚고 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당장 이번 달 씀씀이를 체크하고 여행은 커녕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명목의 펀드 내기에 급급하다. 한마디로 나는 너무나 평범한 오늘을 살아가는 갑순이다.

그래도 나는 겉으로 보여 지는 반짝임 대신 미친 음주로 세상 맛있는 소맥 마는 실력을 가졌다. 내가 타는 거지만 적당히 잘 살아있는 탄산에 소주 특유의 쓴 맛 대신 달달함이 느껴지고 빨리 취하는 소맥을 말 줄 안다. 또 이유 없이 쏟아지는 타인의 분노에 상처받지 않는 법을 배웠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방귀를 뀌어도 코딱지를 파도 더럽지만 사랑은 한다 말 해주는 연인이 곁에 있다. 사랑하는 고양이와 침대에 누워 눈인사를 나눈다. 그 보드라운 털을 당연하게 쓰다듬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전화 걸어 한참을 울어도 묵묵히 기다려주는 친구를 가졌다. 글을 쓰고 글을 읽는 습관을 가졌다. 매일 매일 운동하는 습관을 가졌다.

참, 특별하지 않아도 모나지 않게 자랐다. 요즘 큰 설렘 없이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의 여파도 있고 직장과 집이 서울이 아닌 안산에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참 많다. 칭찬보단 자꾸 책망을 하고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혼내기만 했다.

자연스레 따라오는 우울감. 우울감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연민. 내가 나를 칭찬하고 인정해주는 것. 막연히 늙기만 한 건 아니라고,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고 그래도 꽤나 많은 것을 가졌다고 인정해 주기.

그걸 하기 위해 글을 쓴다. 비록 스무 살에 그리던 서른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테가 늘어난 만큼, 노력한 만큼 잘 크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이가 드는 게 무섭다. 나이만 들고 여전히 가진 게 없는 것 같아 막연한 불안감도 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잘 버텨줘서 고맙다.

오늘 밤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 끝까지 잘 덮고 방안 가득한 내 냄새를 맡으며 “괜찮다. 잘 했다. 잘 하고 있다. 사랑한다.” 스스로를 도닥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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