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왔는가.

문득, 부끄러워졌다.

by 갑순이

어쩌다, 밍구의 추억 여행을 함께했다. 그의 어릴 적 앨범, 그가 자라오는 동안 받았던 상장, 그의 성적표. 고등학교 때 성적표를 볼 때 나는 알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난 고민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전국모의고사 성적표가 한가득 있었다. 심지어 전국 모의고사로 전교 등수를 또 매긴 성적표였다. 언어에서 1개를 틀렸을 뿐인데 전교에서는 한참 뒤에 있는 성적이었다. 중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 상장도 보게 됐다. 중국 유학 한번 다녀오지 않고, 어학원 한번 다녀오지 않고 난다 긴다하는 애들 사이에서 저 상장을 받기 위해 그는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을까? 도대체 얼마나 최선을 다했을까?


수능 전 과목에서 1등급을 맞기 위해 그는 얼마나 최선을 다했을까? 생각이 생각을 키워갈 때, 문득 떠올랐다. 그는 내게 단 한 번도 ‘죽을 만큼 최선이었어, 정말 내 인생 가장 최선이었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 같다. 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다고, 매번 최선이었다고. 문득 결과를 놓고 돌이켜봤을 때 몰려오는 건 부끄러움이었다. 최선의 결과가 지방대였고, 최선의 결과가 지방지였으면, 내가 너무 불쌍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최선의 결과 끝이 지금 다니는 이 직장이라 생각하니 목놓아 울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저, 할만큼만 해왔던 거다. 내가 더 힘들지 않을 만큼만, 딱 그만큼만 했기에 그런 결과가 있었던 거다. 그래 놓고, 최선이었다 스스로 열심히 어쭙잖은 포장을 했던 거다. 말이 아닌 결과로 증명되는 최선인 걸 이제야 알았다. 이 모든 걸 깨닫고 밍구에게 부끄러웠다.


밍구는 이전부터 지금 직장을 떠나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해왔다. 그런 그에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지금 직장에 버텨왔다. 밍구는 경계했다. 가장 고통스럽게 성장해야 할 서른 살이 ‘편해, 너무 심심해’라는 말을 달고 살게 만드는 지금 직장을. 나를 이끌어 줄 리더가 없는 지금 직장을, 모두 입을 모아 내게 일을 잘한다 말하는 지금 직장을.


편했다. 몸도, 마음도. 그 편함에 취해 그의 걱정을 잔소리로 들으며, 내가 창피한 거냐 괜스레 윽박질러댔다. 그리고 변명했다. 지금 직장이 최선이라고, 이곳에 들어와 정말 좋다고. 그와중 나도 느꼈다. 성장은커녕 정체기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를 갉아 먹고 있는 느낌을. 그러나 모른 척했다. 통근 20분 거리의 지금 직장을 포기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지옥철을 왜 견뎌야 하나 싶었다.

그런 내게 밍구의 성적표는, 밍구가 내놓은 결과물은 내게 채찍질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샘솟듯 밍구가 전해 준 그의 친구들 근황이 연달아 떠올랐다. 국내 상위권 대학을 나와 삼성맨으로 근무하며, 나는 꿈도 못 꿀 연봉을 받는 친구가 너무 괴로워한다는 이야기. 그렇게 잘난 사람이 모든 걸 가진 사람이 왜 괴로워하냐는 질문에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본인의 한계를 느끼는 현실에 괴로운 거라고 답했던 밍구의 모습이. 재수 끝에 의대 진학을 하고 인턴 과정 끝에 레지던트 시험을 친 친구가 원하는 과에 붙지 못하자, 다시 한번 인턴 과정을 밟는다는 이야기.


무엇보다 최근 회사 내의 불화에 대해 밍구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너네가 한가한 회사라 내부 총질하고 있는 거야.”

뼈를 때리는 듯한 그의 말에 충격을 넘어 아팠다. 그 충격과 혼란의 시간 끝에 밍구에게 고백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부끄러웠고, 이제 무언가 최선을 다할 것을 찾아내 한평생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겠다고.


다 흘러가 버린 서른 살 마지막 달에 혼자 다짐하고 읊조려 본다.

“입으로 말고 결과로 최선을 증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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