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꿈을 이뤘다.
직장이 꿈이었던 나와의 이별
내가 2년간 쓴 기사는 1천여 건에 달한다.
보도자료부터 기획까지. 참 많은 걸 다양한 걸 썼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나름 넓은 세상을 봤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길을 걸으려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견뎌 왔는지...
사실 기자라는 꿈은 나를 지탱해준 어떤 무조건적인 희망이었다. 내가 만든 환상이랄까.
평범한 가족은 아니었다. 사업을 하느라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아빠. 그런 아빠의 무관심에 병들어 갔던 엄마. 엄마의 화는 무작정 내게 쏟아졌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아직도 날 괴롭게 만들 만큼.
돈만 주는 부모의 무관심, 엄마의 학대. 정말 탈선하기 너무나 좋은 환경이었다. 가출할 명분도 있었다.
너무나 다행히 내가 그 길을 걷지 않았던 건 책 덕분이었던 것 같다. 책을 통해 보았다. 책이 아니라도 너무나 뻔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지독한 밑바닥을 겪게 된다는 걸. 그 밑바닥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없다는 걸.
탈선이 아닌 도망이 아닌 버팀을 선택하며 내가 만든 미래가 목표가 기자였다. 멋진 기자가 돼 엄마라는 인간에게 성공으로 복수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래서 무너지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언론학과를 졸업하고 2년간 언론고시 준비를 하고 결국 합격했다. 들으면 알만한 신문사는 아니었지만, 종합 일간지에 기자로 취업했다.
새벽까지 도는 마와리도 그저 즐거웠다. 내가 기자가 됐다는 방증이었으니까. 매일 한 꼭지씩 취재기사를 쏟아 낼 때도 즐거웠다. 드디어 내 꿈을 이룬 것 같았으니까.
시간이 흘러 연차가 쌓이기 시작하자 기자라는 직업의 현실을 체감해야 했다. 출입처를 압박해 신문을 팔아야 했고, 데스크 지시로 악의적인 지적 기사를 취재해 광고로 바꿔야 했다. 이런 건 학교에서도 언시 생활에도 배우지 못했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기자가 영업사원이라고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눈물과 취재원의 눈물로 얼룩진 기사가 나도 모르게 광고로 바뀌어있던 어느 날 이후로 나는 홀로 파업을 시도했다.
나홀로 파업을 지속하던 중 온갖 욕설과 비난, 인격모독에 결국 난 사표를 제출했다.
사표를 내는 내게 편집국장은 “왜?”
그 간결한 물음에 난 “이상을 꿈꾸는 줄 알았는데 허상이었습니다.”로 답하고 그대로 돌아서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방황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으며, 그저 이불과 일심동체가 돼 천장만 바라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다행히 미친 듯이 살았던 게 습관이 되었었을까? 그 늪에서 2주가량 허덕이다 빠져 나와 병원을 향했다. 뭐 병명은 우울증, 불안 장애 정도. 다행다 싶었다. 그때 당시 나는 나를 지탱하던 가장 큰 기둥이 무너진 느낌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도 모르게 ‘꿈을 포기했다.’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이 사회에서 꿈은 절대적인 것이며, 무조건 가져야 하는 것이며 꿈을 이룬 사람은 어마 무시하게 대단한 사람이라 칭한다.
어마 무시하던 내가 패배자가 됐다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숨쉬며 살던 어느 날, 내게 유일하게 채찍을 휘두르는 다민이를 만났다.
영혼없는 나를 걱정하면서도 재미있게 놀아주던 그녀가 내 허망한 꿈을 포기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역시나 성을 냈다.
세상 다도처럼 생긴 그녀가 사자후를 날리며 쌍욕과 함께 “꿈을 이룬 거지! 왜 포기라는 절망적인 단어를 쓰고 xx야! 니 나이에 한 번이라도 이뤄본 애들이 몇이나 된다고!”라는 말과 씩씩 내는 숨을 몰아쉴 때 잠시 시공간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난... 꿈을 이룬 사람이구나. 꿈의 최종점이 직장이 아니어야 하는구나. 직장이 꿈이면 이런 허망함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거구나. 또 다른 새로운 꿈을 설정해야 하는구나.
그날과 약의 시너지 효과로 지금 난 새로운 꿈을 그리며 살아간다.
당신도 설사 무언갈 하다 내려놓았을 때 ‘포기’대신 ‘성취’라는 단어를 써보는 건 어떨까?
△월요일은 힘드니까 고양이 사진으로 작은 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길